동역자이야기

십억 명의 어머니보다 내 어머니 / 김봉연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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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1건 조회 78회 작성일 25-04-04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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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20년이 되었다. 엊그제 같은데 세어보니 벌써 20년이다. 

어느 책에서 ‘십억 명의 사람에게 십억 명의 어머니가 있어도 내 어머니보다 나은 어머니는 없네’라는 구절을 읽고 메모해 둔 것이 있다. 어머니라는 단어는 어느 누구에게나, 언제 어디서나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어머니가 93세 되던 해에 내가 하던 모든 일을 접고 이제 어머니를 모시고 살자며 암사동에 작은 빌라를 사서 이사했다. 엊그제 책장 정리를 하다 보니 그때 적었던 일기장이 손에 잡혔다. 그 때가 2003년이었다.

2003. 6월6일(금) 밤에 화장실에 들락거리는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집안에 이상한 냄새가 진동을 하고 화장실에는 벗어 놓은 속옷에 변이 묻어 있었다. 어제 과자와 찬물을 드신 것이 그만 배탈이 난 것이다. ‘생전 탈이 안 났었는데’ 하면서 미안해 하신다. 괜찮다며 옷을 갈아 입히고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새벽기도에 다녀왔다. 

6월 8일(일) 주일이다. 어머니는 교회에 안 가겠다고하신다. 옷이 초라하다며 ‘오늘 만 하루 더 쉬고 내일 가자며 우기신다. 안 된다며 목욕시켜서 교회에 갔다. 어머니 모신 지 이제 며칠 밖에 안 됐는데 좀 힘들다. 처음에는 설사로 나를 시험했으나 나는 기쁜 마음으로 감당했다. 몇끼를 죽을 쑤어드리고 오늘은 밥을 드셨는데 하루종일 괜찮았다. 예배시간에 기도할 때도 중간중간에 ’아멘‘ 하면 꼭 따라서 ’아멘‘ 하시는데 그 때의 모습은 천사처럼 순결하고 평화롭다.  

6월 13일(금) 오후에는 함께 시장엘 갔다. 어머니께 모자를 씌우고 휠체어에 태우고 시장엘 가니 사람들이 부러운 듯 쳐다본다. 오는 길에 어머니는 ’아까 왔던 길이 아니다. 너 딴 길로 가는구나 집으로 가는 길이 아닌데‘하신다. 어머니의 걱정하고 근심하는 모든 말에 신경쓰지 말자 했다. 무시하고 초월하자 했다. 양념한 불고기를 사서 나물과 같이 해드렸더니 맛있게 드시며 좋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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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4일(토) 집에 놀러 오신 오집사님에게 어머니는 ’내가 잘 몰라서 그러니 이제 앞으로 전심으로 믿을테니 하나님께 잘 좀 얘기해 달라‘고 부탁하신다. 그것은 곧 중보기도의 요청인 것이다. 주기도문을 한 구절씩 따라 외우라고 했다. 저녁 9시 기도회에 나갔는데 어머니는 앉자마자 엎드려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셨다. ‘천국에서 하나님과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그동안 열 번, 백 번 잘못했으니 다 용서하시고 이제 진심으로 잘 믿겠으니 하나님 잘 좀 봐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기도대원들이 다 조용히 어머니의 기도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어머니는 점점 좋아지신다. 매일 다니는 길을 딴 길로 간다고 걱정하시더니, 이제는 "이 골목으로 쭉 나가면 집으로 가는 길이지?" 하신다.

6월 15일(주일) 오늘은 예배후 어머니를 집에 모셔다 놓고 오후예배는 나 혼자 갔다. 이제는 혼자 집에 있는 것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으신다. ‘난 집에 있을게 혼자 다녀오려므나’ 오후예배 후에 집에 오니 어머니의 얼굴이 매우 평온했다. 정말로 어머니의 본래 모습이 보인다. 그 동안의 불안, 공포, 두려움 등의 모든 껍데기들이 다 벗겨지고 원래 내 어머니의 모습이 보여진다. 바로 저 모습, 저 음성, 저 미소. 바로 본래의 어머니 모습이야. 나는 얼마나 기쁜지 몰랐다. 그 동안의 모든 서운함, 실망, 좌절감 등으로 휩싸였던 것들이 막내딸의 돌봄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다. 오늘 어머니의 모습은 천사와 같다. 아련히 띄우는 입가의 그 미소는 늙어서 이가 하나도 없어도, 93세의 풍상에 시달린 주름이 조글조글하여도 얼마나 아름다운가? 서점에 가서 그림으로 된 책을 샀다. 1권 하나님, 2권 예수님, 3권 성령님에 대한 그림과 간단한 설명이 있는 책이다. 어머니와 함께 이 책을 보며 가르쳐 드렸다. 그 후로는 식사 전에 꼭 기도해 달라며 두 손을 식탁 위로 올려 놓으셨고 기도 후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를 복창으로 따라 하신 후 아멘까지 하셨다.

  6월 25일 (수) 새벽기도에도 잘 나가신다. 가면 다소곳이 엎드려 기도하신다. ’하나님 아버지 기도하러 왔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니 그저 잘 좀 봐 주소서. 막내딸 좀 잘 봐 주시고 손자들 좀 잘 봐 주시고. 뭐 이렇게밖에 못합니다. 그저 좀 잘들 봐 주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그러면서 이렇게밖에 못 한다고 불평이시다. 너무 잘한다고 해도 마냥 걱정이시다. 그러면 예수님 이름이나 좀 가르쳐 달란다. 예수님 이름은 예수님이라고 했더니. 그럼 하나님 이름이라도 가르쳐 달란다. 하나님 이름도 하나님이라 했다. 이 말을 들은 집사님들이 배꼽을 쥐고 웃었다. 어머니의 믿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이 얼마만한지 알 것 같다. 한글을 배우겠다고 하셔서 가르처 드리는데 귀가 제대로 안들리니까 발음이 제대로 안 된다. 시옷이나 히읗등은 영 발음을 따라하지 못하신다. 어머니는 그만 못하겠다고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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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님의 댓글

life 작성일

권사님,
이 글을 읽는 내내 제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어요.
은혜로운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