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역자이야기

나는 왜 목회의 중심을 말씀 묵상에 두었는가 / 안병찬 목사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1건 조회 92회 작성일 25-04-04 20:55

본문

2025. 4. 6.


3965a70d3235c700093b4973134ae47b_1743767649_0904.jpg 

목회를 시작하면서 나는 한 가지 질문을 깊이 품게 되었다. “무엇이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가?” 많은 이들은 교회의 성공을 예배의 감동, 프로그램의 다양성, 사람 수, 혹은 건물의 크기에서 찾으려 한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외적인 조건들이 사라진다 해도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유일한 중심은 ‘말씀’이라는 확신이 내 안에 점점 더 선명해졌다. 그 말씀이 살아 역사할 때 성도는 변하고, 교회는 뿌리를 내리며, 목회자는 흔들리지 않는 방향을 붙들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총신신학대학원에서 개혁주의 장로교 신학을 배웠고, 그 안에서 “오직 말씀(Sola Scriptura)”이라는 개혁자들의 외침이 얼마나 생명력 있는 진리인지를 깨달았다. 말씀은 교회의 장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금도 친히 통치하시며 교회와 성도를 변화시키시는 유일한 도구이다. 말씀 없이 이뤄지는 예배는 감정의 분출일 뿐이며, 말씀 없는 사역은 언젠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내 신학의 골격이 되었고, 동시에 목회의 뿌리가 되었다.

현장의 목회는 이 진리를 더욱 분명하게 증명해 주었다. 내가 처음 맡았던 이 교회는 낡고 조용했다. 예배당의 불은 늘 꺼져 있었고, 십여 년 전 멈춘 듯한 게시판에는 먼지가 쌓여 있었다. 그런 가운데서 내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은 말씀을 펴는 일이었다. 매일 새벽 홀로 앉아 성경을 묵상하고, 그날 주신 말씀을 받아 적고 기도하는 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 고요하고 외로운 시간 속에서 말씀이 나를 붙드시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교회를 숨결처럼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것을 나는 뚜렷하게 보았다.

그때부터 말씀묵상은 나의 목회를 이끄는 ‘방향’이 아니라 ‘본질’이 되었다. 주일 설교의 본문은 그 주간의 묵상에서 나왔고, 새가족 교육도, 중직자훈련도, 사역자 양육도 말씀묵상을 기반으로 구성되었다. 교회학교 교사들과는 매주 말씀 본문을 중심으로 나누었고, 성도들과는 묵상 나눔 소그룹을 통해 삶의 변화와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돌아보았다. 묵상이 교회의 구조를 구성했고, 묵상이 교회의 영적 호흡을 이끌어갔으며, 묵상이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면을 깊이 있게 변화시켜 갔다.

묵상이란 단순한 개인 경건 생활이 아니다. 묵상은 목회자 자신이 먼저 말씀 앞에 서는 훈련이요, 동시에 성도들을 하나님 앞에 서게 하는 영적 인도이다. 묵상을 통해 말씀은 지식이 아니라 생명으로 다가오고, 설교는 정보가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이 된다. 나는 이것을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실제 목회 현장에서 경험했다. 어느 한 해, 교회 재정과 인원이 동시에 위기를 맞이했을 때, 나는 그저 묵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시기에 묵상하던 말씀이 나를 붙들고 흔들리지 않게 하였고, 성도들 또한 뿌리 깊은 신뢰와 겸손으로 공동체를 지켜냈다. 눈에 보이는 상황은 흔들려도 말씀은 흔들리지 않았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교회를 견고히 세워 가시는 손길을 나는 그때도 또렷이 경험했다.

돌이켜보면, 목회 이전의 삶 속에서도 말씀묵상의 은혜는 늘 내 곁에 있었다. 신학생 시절 진로의 기로에서, 뜻하지 않은 가정의 어려움 속에서, 목회현장에서 만나는 치열한 질문들 속에서조차, 항상 말씀 묵상이 내게 방향이 되었고, 때로는 한 구절의 말씀이 내 마음을 꿰뚫으며 울게 하시고 다시 일어서게 하셨다. 고통과 외로움, 실패의 순간마다 사람의 말은 흔적도 없이 흩어졌지만, 말씀은 늘 나를 안아주셨다. 이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변함없이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나를 만나시고, 교회를 이끄시는 분이심을 나는 삶 전체로 고백할 수밖에 없다.

3965a70d3235c700093b4973134ae47b_1743767705_187.jpg 

물론 묵상의 열매는 느리다. 빠른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묵상은 성도를 견고하게 세우고, 공동체를 진실하게 만든다. 어떤 사역보다 오래 남고, 어떤 조직보다 깊게 뿌리내린다. 묵상으로 훈련된 성도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며 반응할 줄 알게 된다. 묵상은 사람을 조급함에서 인내로, 자기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이끄는 은혜의 통로이며, 오랜 시간에 걸쳐 성도의 삶을 말씀의 구조로 바꾸어 간다. 그러한 성도들이 모여드는 교회는 수가 많지 않더라도, 하나님 나라의 진짜 능력을 증거하는 제자 공동체가 된다. 그런 교회는 세상의 풍조에 휩쓸리지 않고, 시대의 소음 속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묵묵히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공동체가 된다.

나는 지금도 새벽이면 말씀을 묵상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때로는 뚜렷한 깨달음이 없는 날도 있지만, 그 침묵조차 하나님이 일하시는 시간임을 믿는다. 묵상은 단지 설교 준비를 위한 사전 작업이 아니다. 묵상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목회자의 영적 호흡이며, 그 호흡이 교회 전체로 이어질 때 진짜 교회가 세워진다. 그 말씀 앞에 머무는 시간이 쌓이고 쌓일수록, 목회자는 사람의 소리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시선으로 교회를 바라보게 되며, 성도들도 그 시선 안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삶을 새롭게 정돈하게 된다. 그것이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능력이며, 말씀이 중심이 되는 교회야말로 살아 있는 교회이기 때문이다.

나는 왜 목회의 중심을 말씀묵상에 두었는가? 그것은 가장 ‘영적인 일’이기 때문이며, 동시에 가장 ‘현실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말씀은 성도를 바꾸고, 말씀은 공동체를 살리며, 말씀은 목회자를 붙든다. 말씀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열어 주며, 동시에 오늘의 삶에 발을 딛고 견고히 살아가게 하는 실제적인 힘을 공급한다. 이보다 더 분명한 이유는 없다.


댓글목록

엘리에젤님의 댓글

엘리에젤 작성일

“눈에 보이는 상황은 흔들려도 말씀은 흔들리지 않았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교회를 견고히 세워가신다”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으며, 목사님의 헌신으로 좋은 영의 양식을 공급 받을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