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역자이야기

하나님, 그동안 저 때문에 폭삭 속았수다! / 이정현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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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0건 조회 14회 작성일 25-04-20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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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젝스키스와 HOT가 최고의 인기오빠였습니다.


한 교실에 거의 60명의 학생들이 신기하게 반반으로 나뉘었죠. 젝키가 오빠인 그리고 HOT가 오빠인 친구들로요. 그 때 어른들이 그룹이름을 ‘핫’이라 부르고 얼굴이 다 똑같이 생겨서 구분이 안 된다고 하는 걸 이해도 할 수 없었고 용서도 할 수 없었더랍니다. 그런데 희수가 엄마엄마... 나의 최애  하면서 사진을 보여줍니다. 저번에도 봤잖아. 그런데 저는 볼때마다 티비에 나오는 남자 아이돌의 얼굴이 다 똑같습니다. 그래서 또 구분이 안됩니다. 어느 곳에서든 희수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노래가 나오면 묻습니다. 엄마! 이 노래 누구 노래게? 저번에도 들었는데 알려 줬는데!  그런데 저에겐 생전 처음 듣는 노래입니다. 


지난 주 갑자기 나이가 헷갈렸습니다. 내가 몇 살이드라? 희수가 열 여섯, 그럼 난 끝자리가 하나 더 있었으니 사십칠? 엥? 아닌데 나 사십육인데... 그럼 희수아빠가 벌써 사십팔? 확인하고 나니 더 놀라졌습니다. 전에 보았던 진짜 많이 어른의 나이가 벌써 내 나이가, 그리고 남편의 나이가 되어있었습니다. 어른들은 다 답답해 보이고 갑갑해 보이던 그 때의 내 나이의 딸내미가 내 눈앞에 있고요. 시간이 어찌 이리 빠른고? 놀라웠습니다. 그 사십칠년의 시간을 저는 교회와 함께 지냈습니다. 지냈다는 표현이 알맞습니다. 습관이고 생활의 일부분이었습니다. 당연히 시간이 되니 세례를 받고 당연히 주일이니 예배를 가고, 예배에 참여했으니 그걸로 되었다. 그렇게 지냈습니다.


예배는 지루할 때가 더 많았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은 지루했습니다. 설교 말씀을 전할 때는 주보 뒤에 있는 광고란을 아주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광고가 길면 아주 탱큐! 광고가 짧으면 노탱큐! 설교가 끝나갈 때쯤의 목사님의 멘트가 얼마나 반갑던지요. 축도마저도 끝까지 기다리지 못합니다. 언능 성경도 닫고 가방에 넣고 이것저것 분주히 챙겨서 목사님의 마지막 기도 전에 후다닥 교회문을 열고나옵니다. 


목사님과 인사 나누는 것도 어른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도 싫어서요. 그리고는 주일 예배를 드렸으니 끝!!! 주일 오후는 나의 것~~~!!

대학생 시절에는 교회 행사에 청년참여가 많았어요. 각종 행사를 준비하고 연습하는 시간이 참말 많았지요. 교회 언니 오빠 친구들 만나서 그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재미졌는지 몰라요. 그리고는 큰 무대 위에서(대형 교회의 본 예배당이 아주 넓었거든요.) 창작칸타타도 하고 찬양도 하고 특별성가대도 하고 그저 재미졌습니다. 공연을 하는 마음이었어요. 주일학교 선생님도 하였습니다. 재밌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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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주일학교 예배가 11시 대예배 시간에 진행됩니다. 그럼 교사인 저는 9시에 1부예배를 드리고 참여하는 것이 마땅하지요. 그런데 슬쩍 예배는 건너뛰고 주일학교만 갑니다. 그러다 장로님께 많이 혼났어요. 그럼서 그 장로님을 참말 미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의 교회 생활 이었습니다. 예배는 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참여하는 의식이었습니다. 목사님이 전해주시는 말씀은 하나님의 진리가 아니라 성경에 나와 있는 잔소리였어요. 기도는 힘들 때, 내가 위로받고 싶을 때, 사용하는 도구였습니다.


말씀은 살아있는 생명이 아니라 그저 전해 내려오는 옛이야기 정도였지요. 예수님은 날 구원하신 실상이 아니라 공자, 맹자, 부처, 간디 같은 선인이었습니다. 헌금은 날 구원하게 만들어주는 티켓이었습니다. 성경책은 깨끗하게 보관해 두었다가 주일에 그 자리에 고대로 있으니 고대로 들고 가야지요. 소중하게 한 자리에 보관해두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기반을 둔 설교는 딱딱했고 와닿지 않았습니다. 대학생이 되니 청년예배를 토요일에 따로 드렸어요. 젊은 전도사님이 전하는 설교는 딱딱한 성경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스토리텔링을 해주시듯 사회에 관한 이야기와 감정에 관한 이야기가 더 많았습니다. 그 때는 그 설교가 얼마나 듣기 편하고 좋았는지 전도사님이 주일 설교도 해주시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그득 차 있었답니다. 찬송가만 부르는 예배보다 CCM을 실컷 부르는 토요예배가 훨씬 즐겁고 좋았습니다. 


강남교회에 왔습니다. 저는 제 걸음으로 걸어왔다 생각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는 신선했습니다. 큰 목소리! 큰 외침! 반복되는 말씀! 미사여구가 전혀 섞이지 않는 딱딱한 말씀! 제 눈에는 굉장히 고지식한 지침들!(마땅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서 지침이라고 표현합니다.) 삶이 예배가 되라는 정말 지키기 힘든 말씀! 예배는 어느 곳에서든지 드리기만 하면 되지 굳이. 중심이 중요하니 중심을 살피라는 고지식한 말씀! 융통성은 1도 없어 보이는 그 말씀!들이 답답이 아니라 신선했습니다.


마음속에 파고들었습니다. 부활주일에 시작된 강남교회공동체에서의 저의 여정입니다. 부활주일은 그래서 더더욱 저에겐 특별합니다. 그런데 그게 시간이 지나면서 스멀스멀 고지식한 목사님이 답답해 보이고 삶이 예배가 되라는 말씀이 무거운 무게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자꾸 드러나길 원해졌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슬쩍슬쩍 반항을 해보려고 꿈틀댔습니다.


그런데 제가 걸어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걷게 하셨고 오게하셨습니다. 그래서 꿈틀거리는 저에게 많은 것들을 이야기해주십니다. 아직도 멀었다. 계속 애써라. 계속 내 안에 있어라. 그래야 니가 살아갈 수 있다.


답답하니? 난 계속 답답했단다. 성질나니? 나도 성질난단다. 소리 지르고 싶지? 그런데 나는 그래도 널 사랑한단다. 그래서 안 이뻐도 지켜보고 있단다. 그러니까 잊지 말아라. 정현아! 지금 니가 사십칠살이 되어 엄마가 되었어도 어른이라 하여도 난 너의 아버지란다. 그래서 항상 니가 불안하단다. 그래서 한 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단다. 그러니 하루하루 돌아오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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