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네 집 이삿짐을 싸는데 오래된 앨범을 발견했다. 분명 일을 해야 하는데, 앨범을 펼쳐든 손은 앨범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왜 그리도 잘생겼던지, 헤헤.
사진 속 나는 연예인 병이 톡톡히 들었던 꾸미기 좋아하는 아이였다. 중학생 때였던 나는 선글라스에 찢어진 청바지에 온갖 똥 폼을 다 잡고 그 시절 가수들 앨범 재킷 사진들을 따라하는 포즈로 찍은 사진들이었다. 어색하면서도 예쁘고, 멋있게 꾸몄던 ‘나’의 모습에 절로 행복한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그 시절 이후에 ‘나’의 사진은 별로 없었다. 20대와 30대 시절 앨범을 찾아봐도 앨범 속에서 나의 사진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나의 사진들 대신 앨범 속에는 아이들의 사진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나’ 없는 앨범이었다. 그래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기억을 더듬을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우울하기도 하고 나 자신이 짠하기 까지 했다. 추억이란 것을 떠올리기엔 나는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나는 남들보다 일찍이 생활전선에 뛰어 들었다. 막노동부터 웨이터 까지 정말 많은 일들을 경험했고, 가는 곳마다 나의 존재감은 빛이 났다. 다들 나와 함께 하고 싶어 했고, 스카우트 제의도 많이 들어왔다. 그러던 중 술집을 아는 형과 함께 차렸는데, 이건 대박이었다. 그렇잖아도 술을 좋아하는 내가 영업이라는 빌미로 매일을 술독에 빠져서 살면서 돈을 버는 일은 꿩 먹고 알 먹고 일석이조의 행복함이었다.
하지만 밤에 일하고 매일 술에 찌들어 사는 삶을 용납할 나의 엄마가 아니었다. 엄마의 지인찬스를 통해 나의 면접자리를 마련하였고 몇 번의 반항 끝에 통신시장에 발을 디뎠다. 영업을 담당하는 나는 신들린 말발과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꼼수 (잔머리)로 단숨에 최연소, 최단기 경력자로 영업 전국 3등이라는 타이틀을 가졌고, 남들보다 큰 노력을 하지 않았음에도 많은 돈을 벌었다. 이것이 나의 능력이라고 으스대고, 나 잘난 맛에 살았다.
하지만 ‘행복’이란 단어는 내 곁에 있지 않았고, 고독, 외로움, 공허함이 늘 함께 했다. 신기하지 않은가? 세상에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는데, 돈이 있어도 즐겁지가 않았다. 돈을 잘 벌어도 ‘로또’를 사러 다녔다.
로또 명당이라는 곳을 찾아다니면서, 가져도 더 갖고 싶은 것이 ‘돈’이어서 그랬던 것인지. 공허함과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돈’을 쫓아 다녔던 것인지 아직도 알 수가 없다. 정확한 것은 성공을 할수록 외로움은 커져만 갔다는 사실이다.
이때쯤 아내와 결혼을 하고 정민이와 민영이를 낳았지만 잠시의 행복함을 느낄 뿐 함께 하면서도 ‘나’의 고독함과 외로움에서 나는 자유롭지 못했다. 일이 하기가 싫어졌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싫어졌다. 영업을 하는 내가 결국엔 말이 하기 싫어져버렸다.
모든 것이 지겨워지고 무기력함을 이기지 못한 나는 광주의 모든 생활을 접고 보성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환경이 변하면 행복할 줄 알았지만, 새로운 곳에 적응을 하고나니 달라진 건 텅 빈 통장일 뿐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나를 잃어 버렸다. 꾸미기 좋아하고 맑고 밝게 웃는 나의 미소와 선한 눈동자가 사라졌다.
오늘 나는 나의 모습을 거울로 바라보았다. 다시 앨범 속 연예인을 따라 똥 폼을 잡던 이정호의 모습이 보인다. 사랑스러운 나의 모습이, 웃는 게 예쁜 잘생긴 내가 보인다. 외국 배우처럼 멋지다는 김해선 권사님의 말씀에 어깨가 우쭐하는 내가 보인다.
왜 일까?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그 해답을 말할 수 있다. 바로 내 안에 주님이 거하시기에 마음에 평안이 왔음을, 주님의 자녀로 멋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의욕이 생겼기 때문에 나에게서 당당함이 보이는 것이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느낀 나의 삶에서 나는 가장 불행함을 느끼고 맛봤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지금 나는 가장 행복함을 느낀다.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그것은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고 나의 중심에 하나님과 함께하는 내 삶이란 것을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항상 나와 함께 계셨고 날 잡고 있었다. 내가 나의 욕심을 버리고 나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지금이 나에겐 모든 것이 완벽하고 가장 행복한 삶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
카메라를 들고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희수를 바라보며 다짐해본다. 그리고 우리 조카 희수와 아들 정민이. 민영이의 앨범에는 항상 행복하고 멋지고 기쁨이 가득한 추억만이 있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의 자녀로 아이들의 모든 순간순간이 주님의 손을 잡고 주님과 함께 숨 쉬는 삶이 될 수 있도록 죽는 날까지 함께 동역하기를 다짐한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목록에 이정호 이름을 당당히 새겨본다. 하나님이 선택한 ‘나’를 감히 내가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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