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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와 무지개 언약 / 김봉연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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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원
댓글 0건 조회 69회 작성일 25-02-22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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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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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강남교회 ‘새백이슬묵상’이 지난 3월 18일부터 창세기가 시작되었다. 이어서 4월 8일에는 홍수 삼판을 예고하시고(창6:17) 많은 비가 40일 동안 하늘과 땅에서 퍼부으며 모든 육체가 다 물로 심판을 받았다. 4월 11일, 하나님께서 다시는 물로 심판을 하지 않겠다며 무지개 언약을 하신다.(창9:13) 이 묵상의 시간을 지내며 오래 전의 홍수의 기억을 떠올려 본다.

내가 강동구 성내동에 살고 있을 때였다.(1984년) 한강 바로 윗동네가 풍납동이고 그 위가 성내동 그 위가 둔촌동이다. 그 주변 몽촌토성을 중심으로 올림픽 경기장을 짓고 있었고, 올림픽 아파트가 조성되고 있었다. 2년 후인 86년에는 아시안 게임, 88년에는 국제 올림픽이 예정되어있는 때였다. 그 해, 84년에 많은 비가 내려 홍수가 났다. 한강이 넘치고 풍납동이 온통 물에 잠기고 성내동 일대까지 차올랐다. 

토요일 밤새 비가 내렸지만 나는 새벽에 일어나 새벽기도를 하려고 교회에 갔다. 교회에 다다르자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더니 나를 보고는 빨리 가게에 가보란다. 나는 그때 성내동 사거리에 동양자수와 표구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달려가 보니 벌써 사거리가 물에 찼고, 우리 가게 앞의 맨홀에서는 물이 분수처럼 치솟고 있었다. 곧 가게 안으로 물이 차오를 기세였다. 나는 빨리 집으로 달려가 남편을 깨워서 가게로 달려가 물건들을 그 건물 2층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우리 물건들은 화선지에 그려진 서예나 그림들과 표구된 작품들, 내가 정성들여 놓은 동양자수 작품들이라 물에 잠기면 절대 안 되는 것들이었다. 처음에는 종아리에 차던 물이 허리까지 올라왔고, 더 지나니 가슴까지 올라와서 물건을 머리에 이고 나르다가 더 이상 다닐 수가 없게 되었다. 대강 물건들을 올려놓고 집으로 오는데 세상이 온통 물바다였다. 우리 집은 조금 위쪽이라 아직 물이 차지는 않았는데 우리가 사는 곳은 지하방이라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웬만한 것은 위로 올려놓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대치하고 있었다.

우리 가게보다 좀 더 위쪽에 호텔이 있는데, 지하로 내려가는 주차장에는 모래주머니를 잔뜩 쌓아놓고 비가 멈추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교회는 그 호텔 안쪽 동네인데 지하에는 물이 가득찼고 1층에까지 발을 디딜 수 없을 정도라 그날이 주일인데 예배를 드릴 수 없다고 했다. 

우산을 쓰고 길거리에 나와서 물이 차오르는 것을 멍하니 쳐다보는 것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속으로만 비가 그만 그쳐서 지하 방인 우리 집에라도 물이 들어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하늘이 뚫린 것 같았다. 노아시대의 홍수심판 때에도 비가 이렇게 내렸을까? 아니 이보다 훨씬 더 많이 쏟아졌겠지. 물의 심판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

그래도 오후에 비가 멈춰주었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해가 쨍쨍 비치며 저 너머로 무지개가 떴다. 노아와 약속하신 하나님의 무지개 언약이 떠올랐다. 나중에 목사님도 무지개를 보았다고 하셨고, “홍수가 6.25전쟁보다 더 무섭다”고 하셨다. 전쟁 때도 예배를 쉬지 않았는데 홍수로 물이 들어차서 예배를 못 드렸다는 말씀이었다. 

풍납동은 완전히 물에 다 잠겼고, 강동구청과 강동경찰서도 다 잠겨 행정이 마비되었으며 구청 앞에 있는 고층 아파트는 2층에까지 물이 차올랐단다. 지하에 있는 보일러용 기름이 흘러나와 물이 넘치는 곳 어디에나 기름띠가 생겼다. 자전거를 타고 풍납동엘 가보니 길거리에 이불과 옷가지, 가구와 가전제품 등의 온갖 살림살이들이 흙더미를 뒤집어쓴 채 쏟아져 나와 있었다. 마치 전쟁으로 폐허가 된 것처럼 아수라장이었다. 

이사를 하려고 집을 보러 다니다 보니 집집마다 방의 벽 도배지에 기름으로 된 선들이 그어져 있었다. 아파트에서 새어 나온 기름띠가 물이 여기까지 차올랐다는 것을 표시해 주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 가게 지하에는 교회가 있었는데 마침 비어 있는  2층으로 피아노를 옮겨 놓았다가 홍수 정리가 끝난 후에 지하로 가지 않겠다며 2층에 눌러 앉았다.  

그때의 홍수피해가 북한에까지 알려져 북한에서 구호품을 보내주었다. 쌀과 담요와 옷감이었는데, 나도 받았다. 쌀은 오래되어서 먹을 수가 없어서 뻥튀기해서 먹고 옷감은 면(綿)으로 된 천이었는데 옷을 해 입기에는 너무 촌스러워 수틀에 압정을 박기 위해 자수 놓을 공단에 덧대어 사용했다. 담요는 쓸만해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2년 후의 아시안 게임과, 4년 후의 국제 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곳에서 이런 큰 홍수가 났으니 모든 기술과 총력을 기울여 완전 정비를 다 하였다. 그 후로 아시안 게임과 국제 올림픽을 무사히 치르게 된 것은 세계가 다 아는 일이다. 

하나님의 무지개 언약이 지켜진 은혜로 대한민국은 그로부터 지금까지 번영의 시기를 지나왔음에 감사를 드린다.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나 신실하시니까.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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