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역자이야기

사계절을 그리다 / 김봉연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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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원
댓글 0건 조회 71회 작성일 25-02-22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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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하염없이 내린다. 마당의 연못에 빗빙울이 떨어지며 수없이 많은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다. 나는 오늘도 이젤을 펴 놓고 화가인 양 연두색 물감을 풀어 바나나 잎을 그리고 있다. 비 온 뒤의 바나나 잎에는 물방울이 맺혀 있고 그 아름다운 모습에 반하여 자꾸만 화폭에 옮기고 싶어졌다. 아직은 그리고픈 모든 것을 그대로 다 표현할 수는 없어도 언젠가는 나도 그렇게 될 날이 있으려니 하며 열심히 그려본다. 비가 오면 비 오는 대로, 쨍하고 해가 뜨면 또 그런대로, 모든 자연의 모습은 그 자체가 수채화다. 

시멘트 벽돌 담장에 얽혀있는 담쟁이도, 해를 바라보고 피는 해바라기가 그 커다란 꽃을 매달고 무거워 고개 숙인 모습도, 푸른 산, 넓은 바다, 그 어느 것 하나 수채화로 그려내지 못할 것이 없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해서 좋다. 그 사계절마다 다른 모습들을 화폭에 담아 보고 싶다. 

봄철의 아름다운 꽃들이 내 화폭에 내려앉으며, 뜨거운 여름바다가 내 품으로 밀려들고, 가을의 단풍 진 산이 내 방으로 들어와 자리 잡는 모습들을 상상해 본다. 

나는 고향도 아닌 강진으로 아무 계획도 없이 살려고 왔다. 무엇을 할까 하고 고민하던 중 강진군도서관을 만나서 알찬 강의를 접하다가 작년(2018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수채화 반에 들어왔다. 서울에서부터 수채화를 하다가 오긴 했는데, 이곳 강진에 와서 도서관의 배려로 기초부터 알차게 배우게 된 것이 여간 감사한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연필로 줄긋기부터 시작했는데 어느덧 작품이 하나씩 되어가는 모습을 본다. 꿈을 꾸는 자가 그 꿈을 이룬다고 하지 않는가.

나름대로는 열심히 그린 그림이지만 부족한 모습이 보이는데 선생님의 손이 닿기만 하면 그림의 판도가 완전히 달라진다. 흐린 날의 그림이 화창한 햇살이 비치는 날의 그림으로, 시들어가는 꽃이 활짝 핀 싱싱한 꽃으로, 앞뒤가 불분명한 물체가 확실한 입체감을 띄게 된다. 그런 선생님의 열정 속에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실력이 늘어가는 것 같다.  

연말에는 전시회를 열자며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저마다의 열정을 가지고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도서관에서 액자 비용을 부담해 주기로 해서 더 열심인 것 같다. 나도 2점의 그림을 완성했다.

서울에서 생각할 때 강진은 남도의 외딴곳이고 문화시설이 많이 낙후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많은 날들을 무엇을 하며 보낼까를 염려했었는데 내 염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마음만 있다면 배우고 싶은 것을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 있는 곳이 강진이다. 나는 지금도 서울의 친구나 지인들과 통화를 하면 입이 닳도록 강진 자랑을 한다. 이렇게 노년에도 하고 싶은 것을 맘껏 하며 폼나게 살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강진은 참 좋은 곳이다. 

(이 글은 2019년에 강진군도서관에서 펴낸 ‘동네방네’란 책의 발간호에 실린 글이다. 강진 아트홀에서 ‘선과 색’이라는 명제 아래 수채화 작품전이 열렸고 나는 그때 회장을 맡고 있어서 군수님을 비롯한 관계자들과 함께  테프 컷팅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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