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역자이야기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 안병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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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원
댓글 0건 조회 82회 작성일 25-02-22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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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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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내 자신의 설교가 잡다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마치 요리를 하며 맛을 내기 위해 이것저것 넣다가 결국 정체불명의 음식이 되어버린 것을 사람들 앞에 내놓아야 할 때와 같은 기분이다. 많거나 적거나의 차이가 있을 뿐, 설교를 준비할 때마다 그러한 마음이 든다. 그럴 때마다 로마서를 정독하곤 한다. 그 일은 내게 설교의 방향성과 설교자로서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중요한 절차이다.

가끔 목사로서의 마음이 무거울 때가 있다. 원래 교회공동체란 마음의 상처를 입고 온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수용하지 못한 내 마음으로 인해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다. 가끔 그런 기간이 오래 지속되고 잘 회복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를 생각했다.

어머니는 한글을 잘 읽지 못하셨다. 어머니는 글을 배우신적이 없었기에 더듬더듬 겨우 한자씩 읽으셨고, 그나마 쓰는 것은 더 힘들어 하셨다. 하지만 어머니의 성경가방에는 항상 두꺼운 성경책이 담겨져 있었다.

예배시간마다 성경을 찾지 못해 옆 사람에게 내밀거나 뒤적거리는 척하다 이내 포기하곤 하시면서도 어머니는 성경책을 가지고 다니시는 것을 포기한 적이 없으셨다. 예배를 위해 먼 거리를 걸어 다니며 비지땀을 흘리면서도 어머니는 두꺼운 성경책이 든 불룩한 가방을 꼭 들고 다녔다. 

가끔 “왜 읽지도 못하시면서 무거운 성경책은 그렇게 꼭 가지고 다니세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혹 어머니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수 있었기에 묻지 않았다.

그러나 목회를 하면서 어머니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성경책은 어머니에게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심리나 자존심도 아니었다. 그것은 온 가족이 모여 가정예배를 드릴 때에도 가족 중에 가장 먼저 “내 성경책 어딨냐?”고 하시며 찾으셨기 때문이다. 성경책은 어머니에겐 믿음의 정체성이었고, 성경가방은 예배자로서의 마땅한 책임감이었다.

전 세계를 휩쓸며 많은 사망자를 냈던 코로나가 끝난 지 수 년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도 교회는 코로나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돌아가지 않고 온라인 예배에 의존하고 있다. 

코로나의 상황 속에서 불가피하게 드렸던 온라인예배가 이제는 바쁜 현대인의 편리한 신앙생활로 인식되고 있다. 교회마다 앞 다투어 주일예배를 실시간 온라인방송으로 내보내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주일성수하지 못했다는 불편한 감정을 가질 필요도 없어졌다.

성도로서의 정체성과 책임감이 사라져버린 세대, 목사로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잃어가는 세대, 오늘 이 세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교회는 각종 종교상품을 파는 또 다른 쇼핑몰처럼 인식되어 가고 있다. 

“암 것도 몰라도 나라도 가서 앉아 있어야 목사님이 힘이 나제, 기도할지 몰라도 목사님이 다 우리 새끼들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 주시잖어!” 

교회 가는 길, 가뿐 품을 물아 쉬며 하시던 어머니의 말씀이 생각난다. 성도로서의 책임감이 무엇인지,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아셨던 분, 어머니는 까막눈이 아니었다.

로마서가 어머니의 마음 같다. 어머니가 성도의 삶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셨듯이, 로마서는 믿음의 본질을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이 교회의 성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에는 올바른 믿음의 방향성이 무엇인지, 복음적인 삶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로마서는 복음의 생명력이 꿈틀거리는 봄의 들판 같고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하다. 

바벨론이 바사에 의해 멸망한 후, 바사 왕의 칙령으로 고국 땅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에 힘썼다. 대적들의 공격과 내부의 적들로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내던 그는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한 후, 비로소 문짝을 달고 성벽재건의 대장정의 사명을 완수하였다. 

어머니가 계셨더라면 “이제 내 아들의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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