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역자이야기

고향과 친척을 떠나 / 김봉연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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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원
댓글 0건 조회 75회 작성일 25-03-0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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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마다 창세기의 묵상이 이어지고 있다. 12장 1절에서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명하신다. 아브람은 이 말씀에 순종하였고 그 후의 모든 생의 주기를 하나님께서 주도하고 계심을 본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며 그냥 그랬나 보다고 쉬 넘어가기 일쑤이지만, 과연 그렇게 떠난다는 것이 쉬운 것일까? 지금 세대 같으면 멀리 타국으로 갈지라도 가지고 있는 재산을 환전을 한다든지 어떤 다른 가치로 바꾸어서 소지하고 갈 수도 있으련마는….

우리 가족에게도 이와 같은 일이 있었다. 1945년 해방이 되고 나자 남북이 분단되었고 정치적으로 사상적으로 남북이 서로 다른 체제의 사회가 형성되고 있었다.

내 고향은 평안북도 영변이었다. 당시 아버지는 경성제대를 졸업하시고 신의주에 서 직장을 다니고 계셨다. 또 제일 맏언니도 신의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상태였다.  해방이 되자 북한에서는 고학력자들을 모아놓고 사상교육을 시켰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대로 북한에 머물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셨고, 결단을 내리셨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과 삶의 터전인 땅과 직장을 다 버리고 큰언니만 데리고 남쪽 땅으로 내려 오셨다. 뒤이어 어머니도 나머지의 쫄망쫄망한 자녀들을 데리고 아버지를 찾으러 남쪽으로 내려오셨다. 삼팔선을 넘기 위하여 조금씩 모아둔 돈으로 안내원을 사서 길안내를 받았고, 오빠와 언니는 학교에 갔다가 가방을 든 채로 안내원의 지시하는 곳까지 와서야 가방을 버렸다고 한다. 혹시 들키면 학교 다녀오는 길이라고 둘러대라고 했단다. 나는 어려서 어머니 등에 업혀 온듯하다. 아무 기억도 없고 다만 어머니와 형제들에게 들어서 알 뿐이다. 

전화도 주소도 없이 무작정 내려와서 그래도 아버지와 언니를 만나기는 했나보다. 그리고 6.25전쟁이 발발했다. 소설도 아니고 영화도 아닌 이 실제적인 사실을 나 혼자 가만히 생각해 본다. 집도 땅도 재산도 직장도 없는 그 세월을 어찌 사셨을까?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때는 전쟁이 끝나고 흑석동의 어느 2층집에서 친척 몇 집이 모여서 살 때였다. 어머니와 오빠가 떡을 만들어 내다 팔려고 돌판에 떡을 치던 모습. 어머니가 반찬이 없어 장독대에 앉아서 밥 위에 소금을 얹어 드시던 모습. 어느 아저씨가 나를 무릎에 앉게 했던 일.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온 식구들이 많이 울던 일. 그래서 나도 따라 울던 일. 언니들이 울지 말라고 해서 울음을 그쳤던 일, 앞 동산에 작은 분봉의 묘가 생겼던 일, 등이 생각난다.

아버지는 막내딸을 무릎에 한 번 앉혀 본 것으로, 내가 아버지라고 불러보지도 못했는데 이 세상을 떠나가셨고, 나는 그 무덤 위를 오르내리며 뛰놀았다.

그 당시에는 북한이 남한보다 모든 것이 풍성했다. 더구나 그곳이 고향인 우리 가족이야 말해서 무엇하랴. 그래도 아버지는 그렇게 크고 엄청난 결단을 하신 것이다. 고향 사람들 중에는 내려오다가 뒤를 돌아보고는 다시 고향으로 발걸음을 돌린 사람이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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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한테 받은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남들처럼 아버지가 없어서 나만 가난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또 창세기를 묵상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남쪽으로 내려올 결단을 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지금도 북한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리며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을 터이니까.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으랴. 아버지는 그 시절에 기독교 신앙을 가지셨다니 그 신앙의 힘으로 그렇게 하실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되어진다. 

아브라함이 친척 고향 아버지의 집을 떠나 순종함으로 믿음의 조상이 된 것처럼, 내 아버지도 아무것도 바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신앙과 자유를 선택하여 온 가족을 데리고 떠나온 것이 우리 가족의 믿음의 조상이 되어 주신 것이다. 아버지가 남기고 간 8남매 중 셋은 전쟁 중에 잃었고, 5남매가 지금껏 자리 잡고 살아 왔다. 신앙의 계승은 나 혼자만 간신히 이어 오다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내 아들과 며느리와 손녀들, 이어서 언니와 오빠와 올케와 조카들까지 믿음의 계보를 이어가게 되었다. 

평안북도 영변을 떠나온 내가 이번에는 평생을 살아왔고, 모든 것의 중심이 되는 서울을 떠나 홀연히 강진으로 내려왔다. 이곳에서 강남교회를 만났고, 하나님의 동역자들을 만났다. 이 동역자들이 나의 친척이요, 나의 친구요, 나의 가족이요, 또한 고향인 것이다. 교회가 있고 동역자들이 있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이곳은 나의 ‘브엘세바’인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라고 말씀하셨다(창15:15). 이제 이곳에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날까지 맡은 바 본분을 다하다가 평안히 주님 품으로 돌아가게 하실 것을 믿는다. 그 날을 바라며 내 집 마당에 연못을 파고 주변에 ‘에셀 나무’를 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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