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역자이야기

길 위의 삶은 / 안병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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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원
댓글 0건 조회 78회 작성일 25-03-0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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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로 인한 합병증으로 신장기능을 잃어 이틀에 한 번 투석을 받아야 하는 어머니는 수 년 전부터 알츠하이머까지 않고 계셨습니다. 한 결 같이 소천하신 어머니 곁에서 손발이 되어주시던 아버지도 암 진단을 받고 몇 차례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다행인 것은 방사선 치료를 받고 계신 아버지는 아직 걸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매일 방사선치료를 받으셔야 하는 아버님과 동행하기 위해 이틀간 형님을 대신해 광양에 내려갔습니다. 병원에서 방사선 치료가 끝나고 나면 요양병원에 계시던 어머니 면회를 가곤 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도 몰라보셨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를 보시자 “여보 왜 인제와?”라고 물으셨습니다. 몇 시간이 흐른 뒤, 면회가 끝나고 가려하면 어머니는 아버지께 왜 벌써 가냐고 또 언제 오냐고 물으셨습니다.

어머니는 어느새 자신만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 계셨습니다. 하지만 아들들은 잊어 버려도 아버지의 손은 꼭 붙잡고 놓지 않고 계셨습니다. 왜 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어머니가 오히려 행복해 보이셨습니다. 눈시울을 붉히시는 아버지 옆에서 어머니를 안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엄마 이 땅위에서 마지막 날까지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살게 해 주세요”

부모님께서 살아오신 모습을 보며, 삶에는 자리보다 길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부모님은 평생을 가난하게 살아오셨습니다. 가난한 살림에 아들만 육형제를 키우셨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집은 비좁고 불편했습니다. 겨울이면 벽 틈사이로 들어오는 한기로, 여름이면 슬레이트지붕에서 타고 내려오는 열기로 잠을 설쳐야 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모든 아들들에게 좋은 길이 되어 주셨고, 삶의 가치는 자리가 아닌 길에서 나온다는 것을 당신들의 인생을 통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부모님은 살아오시면서 항상 좋은 자리를 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주시는 만큼, 그렇게 살아오셨습니다. 남에게 손해를 입히면서 더 가지려는 탐욕도 가기지 않으셨고, 불법을 행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러면서도 늘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베풀기를 좋아하셨습니다.

 요양병원에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아버지가 제게 물으셨습니다.

“왜 너는 그렇게 가난하게 사냐? 목사들도 좋은 차 끌고 좋은 집에서 사는 사람들도 많더라”

나는 짧게 망설임도 대답했습니다.

“아버지 아들이니까요”

그렇습니다. 제가 부모님에게 배운 것은 자리를 탐하는 삶이 아닌 끊임없이 최상의 가치를 쫓아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왜 그렇게 대답했는지 모르실 것입니다. 

봄철이면 늘 교회의 정원을 가꿉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지나가면서 가난한 교회에 오셔서 고생이 많으시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가꾸어도 다른 곳으로 가시면 다 헛된 것을 왜 그렇게 힘들게 일하시느냐고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크고 화려한 자리가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걸어가는 그 길 위에 진정한 행복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내겐 정원을 가꾸는 일 자체가 의미 있고 행복한 일입니다. 

자리를 지향하는 삶은 이미 아름다운 정원이 만들어져 있는 곳에 머물기 원하지만, 길을 지향하는 삶은 황무지와 같은 곳에 손수 정원을 만들며 행복을 얻습니다. 그것이 부모님께 배운 것이며, 성경에 기록된 주님의 여정을 묵상하며 배운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 걷지 못하게 되면 급격히 삶의 균형은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이와 같이 더 좋은 자리에 머무르려고 하는 것은 스스로 걷는 것을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한 삶은 결국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치를 잃게 됩니다.

상처 입은 어린아이를 돌봐주고 있던 테레사 수녀에게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수녀님 당신은 당신보다 더 잘 살거나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편안하게 사는 것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안 드시나요? 당신은 평생 이렇게 사는 것에 만족하십니까?”

테레사 수녀는 대답했습니다.

“허리 굽히고 섬기는 사람에게는 위를 쳐다볼 시간이 없답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십자가의 도를 깨달은 믿음의 선진들과 주님의 제자들, 그리고 무명의 성도들조차 자리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기꺼이 고난의 십자가 길을 택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 날에는 천 그루에 은 천 개의 가치가 있는 포도나무가 있던 곳마다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라”고 했습니다(이사야서 7:23).

세상에서 가장 값진 재물이라도 결국은 황폐하게 될 것입니다. 없어지지 않을 영원한 가치가 있는 그 길, 그 길 위에서 함께 아름다운 동역자로 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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