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역자이야기

주여 이 첫걸음의 무게를 이기게 하소서 / 안병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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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원
댓글 0건 조회 111회 작성일 25-03-12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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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에도 강한 바람이 붑니다.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에서 시작된 바람이 체코에 차가운 강풍을 몰고 오며 때때로 한여름에도 도토리만한 우박을 들판 가득 쏟아냈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지 수개월이 지났지만, 바이칼 호수에서 불어오던 차가운 바람이 오히려 그립습니다. 체코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러시아의 광활한 땅을 지나갈 때마다 보았던 바이칼 호수, 그곳을 지날 때면 비행기로 수십 분을 날아가도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습니다. 호수가 마치 바다 같다는 생각을 수없이 되뇌이다 문득 갈릴리호수를 떠올리곤 했습니다.

강진에도 강한 바람이 붑니다. 바이칼 호수에서 불어오던 체코의 그 강풍을 다시 만난 것 같아 오히려 반갑습니다. 대나무 숲을 연신 흔들어대며 멀리 바다에서 밀려오는 강풍은 마치 체코에서의 일상을 옮겨 놓은 듯합니다. 어느덧 강진으로 온 지 한 달이 다 되었습니다. 노쇠해진 50년 된 교회 건물은 이곳저곳이 균열이 있고 우거진 잡초들이 오고갔던 성도들의 흔적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예배당에 들어서자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듯 훅 달려드는 먼지 냄새는 묻지 않아도 이곳 예배당이 얼마나 오랫동안 비어 있었는지를 실감케 했습니다. 마음에 무거운 돌덩이가 있는 듯 어떻게 시작하고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막해졌습니다. 다시 사람들이 찾아오는 교회로 세워가기 위한 그 첫걸음을 앞두고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엄습해왔습니다. 내 입에서 탄성이 나도 모르게 흘러나왔습니다. “주여, 이 첫걸음의 무거움을 이기게 하소서.” 마음의 무게를 생각할 겨를 없이 우선 눈에 보이는 것부터 정리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렇게 첫걸음을 내디뎠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다 보면 될 거야’ 하는 스스로의 위안도 잠시, 새벽마다 무릎 꿇고 기도할 때면 어쩔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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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마다 주님께서는 내 마음을 어루만지셨습니다. “주의 길을 가며 어디로 가느냐 묻지 않기로 하지 않았느냐.” 마음에 그런 마음을 주시고 그저 가고 있는 길을 묵묵히 가면 길을 열어 보이시겠다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랬을지 모릅니다. 복음을 전하며 옥에 갇히고 태장을 맞을 때마다 “주여, 나에게 왜 이런 고난을 주십니까?”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첫걸음의 무게감은 항상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때마다 있었습니다. 감옥과 같은 곳에서, 태장의 아픔을 견뎌가며 다시 복음 사역을 위해 나아가려고 할 때, 사도 바울도 그 첫걸음의 무게감에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신 것이 어쩌면 이렇게 기도하는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울의 길’이 아닌 ‘주님의 길’, ‘나의 길’이 아닌 ‘주님의 길’, 두려움을 떨쳐 버릴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저 이 무게감을 떨쳐버리지 못할지라도 멈추지만 않으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길 위에서 길을 묻지 말자’ 멈춰 있는 시간이 어쩌면 내게 더 큰 두려움이 될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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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이 그 걸음의 무게감을 이겨내고 끝까지 주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기도의 힘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때마다 위로와 평안을 주시는 주님의 말씀에 나 또한 오늘도 여전히 이 길을 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동역자의 걸음에도 주님의 평안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인도하심을 받아, 오늘도 묵묵히 걸어갑니다. 작은 첫걸음에서 시작된 여정이지만, 주님께서 동행하심을 믿으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갑니다. 비록 길이 험하고 두려움이 앞서더라도, 주님의 길을 따라가며 끝까지 그분의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이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어려움과 고난이 주님의 계획안에 있음을 믿고, 주님의 은혜로 이겨내길 소망합니다. 주님, 이 첫걸음의 무게를 이길 수 있게 하소서. 그리고 이 여정 속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주님의 사랑을 나눌 수 있게 하소서. 주님, 우리 모두에게 평안을 주시고, 주님의 길을 걸어갈 힘을 주소서.  

2021년 12월 강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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