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역자이야기

눈이 방울 같아서 방울이 / 안병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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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원
댓글 0건 조회 67회 작성일 25-03-20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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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견 보호소의 세 번째 칸에는 안락사를 기다리는 녀석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유기견 보호소는 개들을 수용하는 칸을 세 개로 나누어 놓았습니다. 첫 번째 칸은 이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녀석들, 두 번째 칸은 안락사 대기 칸, 세 번째 칸은 안락사가 임박한 녀석들이 있는 곳입니다.

세 칸에 각각 나뉘어 수용된 녀석들이 족히 백 마리는 넘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중에 단 한 마리도 낯선 사람인 나를 향해 짖지 않았습니다. 개들도 자기 집, 자기 주인이 있는 곳에서만 짖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상하게도 한 녀석도 짖지 않고, 오히려 낯선 나에게 꼬리를 흔들며 매달리기만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눈이 방울처럼 크고 털이 하얀 녀석이 펄쩍펄쩍 뛰어오르며 가장 튼튼해 보였습니다. 사실, 저는 아담하고 귀여운 녀석을 데려올 생각이었지만, 그 녀석을 데려오게 되었습니다.

눈이 방울 같아서 ‘방울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집에 데리고 온 날부터 방울이는 시름시름 앓더니 일주일 동안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팔팔하던 녀석이 겨우 기운을 차리고 방이며 거실을 돌아다니기 시작할 무렵,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방울이는 털이 심하게 빠졌습니다. 우리 집은 아파트였기에, 아내는 데리고 나가든지 내다 버리라고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심하게 다툰 어느 날 저녁, 나는 방울이를 보조석에 태우고 20분 정도를 달려 산으로 데려갔습니다. 라면 상자에 방울이를 앉히고 쓰다듬으며 미안하다고 말한 후 산을 뛰어 내려왔습니다. 시동을 걸고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았을 때 백미러를 보니, 방울이가 죽을 힘을 다해 따라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가속 페달을 더 힘껏 밟으며 내 마음을 더 짓눌렀습니다. 눈물이 나서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쯤 달렸을까요, 방울이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새벽녘까지 뒤척이다 결국 다시 차를 몰고 산으로 향했습니다. 제발 그 자리에 없기를 바랐습니다. 산 중턱에 라면 상자를 놓아두었던 곳으로 다가가며 방울이를 불렀습니다. 방울이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캄캄한 밤, 인적도 없는 곳에서 밤새 기다렸던 방울이는 나를 보자 꼬리를 흔들며 핥아댔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자기를 버리려 했던 나를 방울이는 여전히 반기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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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서 사는 동안 좁은 베란다에서 방울이는 잘 버텨주었습니다. 그리고 주택으로 이사한 후에는 마당에서 마음껏 뛰어놀게 되었습니다. 방울이는 이제 헤어질 수 없는 우리 가족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장모님이 오셔서 시골집으로 데려가겠다고 하셨습니다. 방울이가 너무 영리하다고 칭찬하시며 홀로 외롭게 사시는 장모님을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차에 태우고 다섯 시간을 달려 방울이를 장모님께 데려다 드렸습니다. 내리지 않겠다고 버티던 방울이를 억지로 끌어내어 대문을 닫고 다시 차를 몰았습니다. 방울이는 이제 장모님의 딸이 되었습니다. 운동도 같이 다니고, 복지관에도 함께 갔다가 돌아오곤 했습니다. 장모님은 방울이가 자식보다 낫다고 하셨습니다. 추운 날엔 거실에서 재우고, 새끼를 낳을 때는 고기를 사다가 숟가락으로 떠먹이셨습니다.

장모님댁에 보낸 지 십 년이 지났는데도 방울이는 나를 잊지 않았습니다. 버리려 했던 나를, 그리고 또 한 번 버렸던 나를, 그래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처갓집에 가면 내 차 소리만 들려도 방울이는 달려와 보조석에 성큼 올라타 내리지 않으려 합니다. 장모님이 하늘나라 가시면 다시 데려올 거라고, 방울이에게 매번 약속했습니다. 제대로 걷지 못하시는 장모님을 잘 돌봐드리고 나면 꼭 데리러 오겠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나는 방울이에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수년 전, 방울이는 나이가 많아 병들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여전히 내 책상 위에는 방울이의 사진이 붙어 있습니다. 그 사진을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방울이는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진정한 사랑과 용서, 그리고 기다림의 의미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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