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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단상 / 안병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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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0건 조회 38회 작성일 25-04-04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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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물은 단순한 자연의 요소가 아닌 생명의 본질을 상징한다. 창세기에서는 혼돈과 공허 속에서 물이 존재하며 생명의 시작을 알린다. 물은 하나님의 창조 이전부터 자리를 지키며 삶의 기운을 품고 있었다.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약속하며 물의 깊은 의미를 드러낸다. 이 물은 육체의 갈증을 넘어 영혼의 갈망을 채우는 영적 은혜를 담고 있다.

물은 우리의 삶 속에서 흔하지만 그 존재는 결코 가볍지 않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며, 모든 것을 포용하는 힘을 지닌다. 물은 우리의 마음을 비추고 그 안에 담긴 생각들을 드러내게 한다. 물의 성질은 그저 담긴 대로 고여 있을 뿐이지만, 그 고요함 속에는 우리 삶을 뒤흔드는 힘이 있다. 만약 우리가 물처럼 타인을 받아들이고 포용할 수 있다면, 우리 공동체는 더욱 투명하고 맑게 흐를 것이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우리는 종종 배타적인 마음을 품는다. 나와 다른 사람, 다른 생각, 다른 행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경계 짓고 나뉘며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우리의 공동체는 종종 서로를 의심하고 배제하며 무관심하게 흘러간다. 그 결과는 물의 원래 성질과는 다르게 흘러가며 때로는 격한 물보라와 매캐한 냄새를 풍긴다. 그처럼 타인의 마음과 생각이 서로 겹치고 포용되지 못할 때, 우리 안의 공동체는 탁해지고 시들어 버린다.

물은 본질적으로 고요함이다. 어떠한 형태도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를 담아낸다. 우리는 그 고요함을 배워야 한다. 그저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마음이 우리 안에 고이도록 허락할 때, 진정한 공동체의 숨결을 만들어낼 수 있다. 마치 물이 모든 것을 포용하며 흐르듯이, 우리는 타인을 마음의 깊은 곳에서부터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자신의 시야와 판단을 우선하며 타인의 소리를 흘려버린다. 물이 맑게 흐르지 못하고 오염된 것처럼, 우리의 공동체도 그렇게 순수함을 잃어간다.

공동체는 한 사람의 고립된 공간이 아니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는 하나의 커다란 호흡이다. 물은 각기 다른 작은 물방울들이 모여 큰 흐름을 만든다. 우리는 서로 다른 성향과 생각을 가진 개인들이지만, 그 다양성이 모일 때 공동체는 생명력을 얻는다. 배타성은 그 흐름을 막는 장벽이며, 물의 본질인 고요한 포용을 방해한다. 타인을 나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다른 존재를 내 안에서 끊어내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 생명의 순환을 끊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속의 물은 더 이상 잔잔히 고이지 않고, 격렬한 파도로 바뀌어 버린다.

나는 내 삶의 많은 순간에서 물처럼 넉넉한 포용을 보여주지 못한 때가 있었다. 나의 틀에 맞지 않는 생각이나 행동을 만났을 때, 그것을 포용하지 않고 높은 벽을 쌓았다. 그 결과 나의 내면의 흐름은 점차 탁해졌다. 물의 순수함이 아닌, 내 안의 오염된 마음이 그 탁함을 만들어냈음을 알았다. 공동체 안에서 배타성을 버려야 한다는 것은 나의 기준과 선입견을 내려놓고,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물이 그저 고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어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물의 속성을 본받아야 할 때다. 포용의 물이 되어야 한다.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타인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는 넉넉함을 가질 때, 우리 공동체는 비로소 본연의 흐름을 되찾을 것이다. 물이 비추는 것은 단지 나의 모습이 아닌,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의 모습이다. 그것은 무형의 흐름이지만, 그 속에 삶의 의미와 생명의 본질이 담겨 있다.

배타성을 버리고 물처럼 살아가자. 서로의 마음속에 잔잔히 고이고, 서로를 비추며 맑게 흘러가자.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더 이상 나와 타인을 구별하지 않고, 공동체의 근원인 하나된 숨결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물처럼 고요할 때, 비로소 그 안에 타인을 담고 함께 성장할 수 있다.

물은 생명이며 그 맑음은 창조주의 근원적 성품이며 포용은 그 분의 호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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