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역자이야기

밥알 함부로 흘리지 마라 / 김봉연 은퇴권사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0건 조회 45회 작성일 25-04-04 20:37

본문

3965a70d3235c700093b4973134ae47b_1743766606_2249.jpg 

 아들이 어렸을 때 밥 먹을 때마다 밥알을 많이 흘렸다. 조금 컸을 때 “밥알 흘리지 마, 이 쌀 한 톨이 만들어지는데 1년이 걸린단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엄마가 어릴 때 쌀 한 톨 만드는데 1년이 걸린다고 해서 정말인 줄 알았어요. 그럼 그 많은 쌀을 만드는데 도대체 얼마나 걸리는 걸까?”라고 생각했다는 거다. 한 톨이든, 한 가마니든, 일 년에 한 번 농사지어서 추수하는 것이니 일 년 걸리는 것이 맞지 않는가.

평생을 도시에서만 살다가 강진으로 귀촌을 했다. 화분에다 화초를 가꾸어 본 것 말고는 땅과 친숙할 기회가 없던 내가 한쪽에 있는 텃밭을 일구기 시작했다. 밭에 고랑을 내고 풀이 나지 못하게 비닐도 씌웠다. 마을 사람이 가져다 준 강낭콩도 심고, 장날에 읍에 나가서 피망, 고추, 토마토, 가지 등의 모종을 사다 심었다. 옥수수는 씨앗을 사서 밭 가에다 군데군데 뿌렸다. 집 뒤쪽에는 장독대 옆으로 구덩이를 파고 호박씨도 묻었다. 씨를 뿌리면 싹이 나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지만, 땅 속에 묻어 놓은 것이 과연 싹이 날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매일 물을 주고, 또 비도 때맞추어 내려 주니, 과연 흙덩이를 뚫고 삐죽이 파란 떡잎이 돋아나는 것을 보고 신기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그것뿐이랴,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가는 모습을 보며 오뉴월 하룻볕의 위력을 실감한다. 그런데, 내가 심은 것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자라지 말아야 할 잡초들이 더 많이, 더 크게 자라는 것을 보며 그것들을 뽑을 일이 걱정이다. 성경에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이 뽑힐까 염려한다는 말이 있는데, 과연 그렇다. 옆에 자라는 풀을 뽑다보면 그 뿌리에 얽혀 채소가 뽑히기도 하고, 풀과 야채를 구분 못하고 마구 뽑다가 이제 싹이 나서 자라기 시작한 귀중한 것이 뽑히기도 한다. 

잡초들은 지지대를 세워주지 않아도 쓰러지는 일 없이 굳세게 잘 크는데, 고추 가지 토마토 등은 막대를 세워 받쳐주지 않으면 옆으로 쓰러져 열매를 제대로 맺을 수가 없다. 나도 처음에는 지지대를 세우고, 커감에 따라 끈으로 묶어 주었다. 그런데 깜박할 사이에 지지대보다 더 커져서 옆으로 누워버리고, 쳐지기 시작했다. 자식들도 커지면 마음대로 안 되듯이, 이것들도 마구 커버리니 어느새 손 쓸 틈도 없이 제멋대로 가지를 뻗고, 밑으로 쳐지고, 옆으로 휘어져 있다. 고추나 토마토 등은 밑의 곁가지를 잘라주어야만 한 가지만 튼실하게 잘 자라서 열매도 많이 맺는다는데, 나는 그것도 제대로못해 이리저리로 가지가 뻗쳐 나왔다. 거기에다 밭고랑에 난 풀도 미쳐 손이 닿기 전에 장대 같이 커져서 손을 쓸 수조차 없게 되었다. 고추를 따려면 숲을 헤치고 들어가야 하고, 토마토를 따려면 익은 것을 골라 따느라 아침이슬에 옷이 젖어야만 했다.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고, 땀 흘리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다는 걸 알았다.

이 작은 밭 한 뙤기 가꾸는 데도 이리 벅찬데, 마을 이곳저곳에 펼쳐진 넓은 밭들을 쳐다보면 어찌 그리 질서 정연하게 잘 가꾸어 놓았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 너른 고추밭에 일렬로 늘어선 고추들은 하나 같이 싱싱하게 잘 크고, 콩 밭은 콩밭대로, 참깨 밭은 참깨 밭대로, 언제 심었나 싶었는데 벌써 참깨가 다닥다닥 맺혔다. 

작은 텃밭에 몇 가지 심어 놓고도 제대로 손을 쓰지 못하는 나를 보며, 새벽부터 저녁까지 쉴 틈 없이 분주하게 일하는 농부들의 노고를 생각한다. 쌀이 포대에 담겨 내 집에 들어오기까지. 고춧가루가 내 손에서 양념으로 쓰일 때까지, 채소와 과일들이 식탁에 오르기까지, 그 흘린 땀과 수고가 얼마만큼인지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으랴. 

도시에서는 마트에 가면 모든 채소와 과일이 지천으로 깔려있고, 재래시장에도 농산물이 넘쳐난다. 그것들의 소중함을 몰랐는데, 그렇게 상품화되어 시장에 나오기까지 농부들의 일손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생각하면 물건값을 깎았던 일이 부끄럽다. 누구라도 뙤약볕에 한 시간만 서 있어 본다면 절대로 농산물 가격을 깎으려 하지는 않으리라.  

마을의 어르신들을 보면 거의 다 아프시다. 그 아픈 곳이 대체로 무릎과 허리 등이다. 그러다 보니 밭에서 나는 것들로 약재를 삼는데, 우슬초 뿌리는 뼈(골다공증)에, 돼지감자는 당뇨에, 수세미는 변비 등에 좋다며 일일이 다 꿰고 있다. 그것들로 약을 만들어 드실 뿐만 아니라 이런 약재들을 말리고 볶고, 즙을 내서 자녀들에게 보낸다. 농사지은 것도 박스에 담아서 택배로 보내는 것이 낙이요 즐거움이란다. 그 맛에 아파도 참으며 계속 심고 거둔다.

가을이 되면 빨갛게 익은 고추를 따서 씻어 말리느라 길거리마다 고추가 널려있다. 조그만 모종을 심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해와 비를 맞고, 농부의 땀방울을 머금더니 어느새 빨간빛깔로 곱게 물들었다. 논에서도 알곡이 알알이 익어간다. 자식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땀방울처럼.... 이것을 받아먹는 자녀들도 그 땀 냄새를 맡을 수 있겠지. 

늘 감사한 마음으로 한 알의 밥알도 함부로 흘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