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유다서 1:1-16 / 주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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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0건 조회 97회 작성일 25-04-04 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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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받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2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5 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7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8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비방하는도다

 9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10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는도다 또 그들은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11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

12 그들은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의 애찬에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13 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으로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14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15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16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하며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 주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진리가 희미해지고, 경건의 능력이 사라져버린 시대입니다. 교회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교회 안에는 말씀의 권위보다 자기 욕망과 감정에 충실한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하나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우리가 누구인지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리 안에서 흔들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유다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라고 소개합니다(1). 이 속에는 깊은 자기 인식이 담겨 있습니다. 유다는 혈통적으로는 예수님의 형제였지만,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 고백함으로써, 참된 신앙인의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참된 신앙인의 정체성을 하나님의 선택과 부르심 안에서 출발하는 소명의식으로 이해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하시며,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시고, 믿음 안에 보존해 가신다는 구원의 서정은 단지 감정적 고백이 아닌,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은혜에 기초한 실체입니다. 유다는 이 사실을 분명히 하기 위해 편지의 대상에게도 "부르심을 입은 자들,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정체성을 강조합니다(1). 하나님께 속한 자는 부르심을 입고, 사랑받고, 지키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이 정체성을 감추고 삽니다. 진리를 분명히 말하지 못하고, 세상과의 긴장 속에서 복음을 희석시키려 합니다. 그러나 유다는 경고합니다. 교회 안에는 언제나 거짓 교사들이 은밀히 들어와 하나님의 은혜를 방탕으로 바꾸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게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말입니다(4). 여기서 유다는 구약적 전례를 들어 설명합니다. 출애굽의 은혜를 경험했지만 믿지 않아 멸망한 이스라엘 백성들(5), 처음의 자리를 지키지 않고 떠난 천사들(6),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7)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가볍게 여긴 자들에게 임한 심판의 예입니다. 개혁주의 신학은 은혜의 언약을 파기한 자들에게는 심판이 따른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값싼 것이 아닙니다. 은혜는 반드시 순종을 요구하며, 구원의 은혜는 삶의 열매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거짓 교사들의 특징은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 중심이라는 데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꿈과 환상을 높이며, 권위 있는 자들을 비방하고, 말과 행위가 일치하지 않습니다(8). 유다는 미가엘 천사조차도 하나님의 이름으로만 사탄을 책망했다고 말합니다(9). 이는 참된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과 권위 아래 순복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반면 거짓 교사들은 본능에 따라 살아가며, 이성 없는 짐승처럼 자기를 더럽히고, 무질서한 삶을 살다가 결국 자기 파멸을 향해 나아갑니다(10).

유다는 이들을 가리켜 “가인의 길을 따르고, 발람의 오류에 몰두하며, 고라의 패역에 빠졌다”고 말합니다(11). 이 세 인물은 모두 자기 중심성, 욕망의 노예됨, 하나님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인은 시기심과 자기 의로 가득한 제사를 드렸고, 발람은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팔았으며, 고라는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에 도전한 자였습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했지만, 실제 삶에서는 믿음이 아닌 본능과 정욕에 이끌렸습니다.

유다는 오늘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너는 지금 어떤 길 위에 서 있는가?” 입술로는 주를 고백하지만, 실제 삶은 거짓 교사들과 다를 바 없는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합니다. 신자는 말과 삶이 일치해야 하며, 은혜를 입은 자답게 경건의 능력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자는 날마다 회개하며, 자기 부인과 십자가의 길을 따릅니다. 참된 믿음은 단지 시작이 아니라, 끝까지 견디는 믿음입니다.

유다는 마지막으로 에녹의 예언을 인용합니다. “보라 주께서 그 수많은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무수한 불경건한 자를 심판하려 하심이라”(14-15). 유다는 종말론적 시각에서 거짓 교사들의 종국이 결국 심판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선언합니다. 오늘은 악한 자들이 득세하고, 거짓이 더 효과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의 때는 반드시 오며, 그 날에는 진리와 거짓이 분별되고, 경건과 위선이 갈라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다는 거짓 교사들의 외적 행동에만 주목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내면, 곧 불평과 원망, 정욕을 따라 사는 삶, 아첨과 자랑으로 가득 찬 말들을 통해 그들의 정체를 밝힙니다(16).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이 아닌 자기 욕망에 사로잡힌 삶의 증거입니다. 성도는 이러한 자들을 분별하고 경계해야 하며, 무엇보다 스스로가 이들과 같은 모습은 없는지를 진지하게 점검해야 합니다.

개혁주의 신학은 언제나 “하나님의 주권”과 “성도의 견인”을 함께 강조합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시작되며, 그 은혜는 사람의 행위나 공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과 선택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성도는 자신의 구원을 스스로 이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끝까지 지켜가시는 은혜의 손길 아래 놓여 있는 존재입니다. 이 신학은 우리로 하여금 구원의 불확실성 속에서 두려워 떠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한 번 부르신 자를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는 확신과 위로를 갖게 합니다. 그러나 이 ‘견인’의 교리가 게으른 신앙의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지키시는 자는 실제로도 믿음 안에서 인내하며, 말씀에 순종하고, 거룩함을 사모하는 삶으로 그 구원의 증거를 드러내게 됩니다.

유다는 우리에게 분명하게 권면합니다.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3). 이것은 단순히 외부의 이단이나 거짓 교사에 대한 방어적 태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 안에 있는 게으름과 무관심, 세상과 타협하려는 내면의 욕망과 끊임없는 싸움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자주 육체의 정욕과 세상의 가치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진리는 단지 머리로 아는 지식이 아니라, 삶으로 살아내야 하는 거룩한 실천입니다. 성도의 견인은 바로 이 치열한 내면의 영적 전쟁 속에서 성령의 도우심을 따라 말씀을 붙잡고, 기도로 싸우며,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려는 분투 속에서 실현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신앙의 나태함과 영적 둔감함을 경계하며, 말씀 앞에 깨어 있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심을 입은 자,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지켜지고 있는 성도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진리 안에서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야 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길만이 생명의 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말씀이 중심이 되는 신앙, 정욕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삶, 주님의 재림 앞에서 부끄럽지 않을 거룩한 삶, 그것이 성도가 살아가야 할 "주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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