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고난주간 3일차) 마 26:69-75 / 나는 그를 알지 못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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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0건 조회 44회 작성일 25-04-16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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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여종이 나아와 이르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70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71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여종이 그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72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73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74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나는 그를 알지 못하노라


그날 밤, 베드로는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사람인지 뼛속 깊이 깨달았습니다.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부인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다짐했던 그가, “나는 그를 알지 못하노라”고 세 번이나 말하게 될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 작은 여종의 질문 앞에서 시작된 그 부인은, 맹세와 저주로 이어졌고, 결국 주님과의 관계를 완전히 부정하는 자리까지 나아갑니다.

믿음은 언제나 중심에 서서 대면하는 싸움입니다. 멀찍이 따르던 베드로는 바깥뜰이라는 ‘안전한 거리’에서 앉아 있었지만, 그 자리는 진리의 중심이 아닌 회피의 자리였습니다. 신앙을 애매하게 표현할 때, 우리는 점점 주님에게서 멀어집니다. 처음엔 얼버무렸던 부인이 나중엔 저주와 맹세가 되고, 결국 죄는 점점 더 깊어지는 것입니다.

닭이 울던 순간,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오늘 밤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그 말씀이 그의 가슴을 찔렀고, 그는 밖에 나가 심히 통곡합니다. 주님의 눈빛 하나가, 말보다 더 큰 회개의 자리를 만들어냈습니다. 그것은 책망이 아니라, 사랑과 회복의 시선이었습니다.

우리도 바깥뜰에 앉아 있을 때가 많습니다. 말로는 부인하지 않아도, 행동과 침묵, 회피로 예수님을 외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주님은 우리를 시인하십니다. “나는 너를 안다. 나는 십자가에서 너를 위하여 죽었노라.” 주님은 단 한 번도 우리를 모른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위하여 지금도 하늘 보좌에서 중보하고 계십니다.

베드로는 다시 일어났습니다. 세 번의 사랑 고백으로 부인을 회복했고, 결국은 순교의 자리까지 나아갔습니다. 우리도 그 은혜 앞에서 다시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 나는 연약합니다. 그러나 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 고백이 오늘도 우리의 믿음을 붙들어 주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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