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마가복음 12:35-44 / 외식을 버리고 진실함을 회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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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원
댓글 0건 조회 60회 작성일 25-03-01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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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새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36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37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듣더라

38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39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40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41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4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 외식을 버리고 진실함을 회복하라
우리의 일상에서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의 평가와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갑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은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때로는 이러한 마음이 진실한 모습보다 외적인 모습에 더 집중하게 만듭니다. 성공을 포장하기 위해 실속 없는 화려함을 앞세우거나, 진심이 없는 말과 행동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고 하는 모습은 현대 사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이러한 외식적인 태도는 결국 우리의 내면을 비워버리고, 진정으로 중요한 가치를 잃게 만듭니다. 예수님께서는 외적인 형식과 겉치레에 집중했던 당시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시며, 진실함과 내면의 중심을 바로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바리새인들에게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고 물으십니다(35). 물으신 후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바리새인들에게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36-37).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가 육체로는 다윗의 혈통으로 오셨지만, 영적으로는 영원 전부터 다윗의 주가 되심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장차 자신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으로서 오시는 분이며,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임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윗이 자신의 후손으로 오실 이를 ‘주’로 고백한 것을 말씀하시며(시 110:1), 그가 바로 성령 안에서 메시아로 오실 분임을 예언한 것으로 인정하십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베들레헴에서 다윗의 혈통으로 메시아가 오리라는 예언의 말씀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사 9:6-7, 미 5:2), 나사렛 출신의 목수의 아들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요 7:31, 10:24-38).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약속의 말씀대로 다윗의 혈통으로 오셔서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가 되시는 분이 이 땅에 오셔서 수많은 표적을 통해 친히 그리스도이심을 드러내셨고, 하나님 되심을 깨닫게 하셨지만 유대인들은 자신들과 상관없는 분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고 고백하였습니다(롬 1:3-4). 같은 예수님을 보았지만, 바리새인들과 같은 종교 지도자들은 음모를 꾸며 죽이려 했고,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이심을 정확히 깨달은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적으로 삼았지만 바울에게는 주님이 되셨습니다. 나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지 돌아봅니다. 주일에만 부르는 이름으로서의 존재도 아니며, 성경 속에서 말씀을 통해 가끔 나에게 위로만을 주시는 분도 아닌, 온전히 내 모든 삶을 통해 고백하는 참 하나님이심을 확신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리에 연연하고 권위를 앞세우는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 대해 조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38-40). 마태복음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회당에는 돌로 만든 의자가 있었습니다. 그 자리는 권위 있는 자리로 학식과 인격을 겸비한 선생들이 앉는 자리였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선생으로서 그 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마치 모세의 권위를 계승한 것처럼 모든 사람에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들은 그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정신은 버리고 외식된 행위를 하는 자들로, 이미 예수님께서는 그들에 대하여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마 23:13). 지도자로서 그들의 권위를 인정하시지 않은 것입니다. 행함에 있어 성실한 사람은 침묵으로도 모든 사람에게 권위를 인정받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율법적인 지식에는 능한 자들이었으나 행함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의 천국 문을 가로막는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은 바리새인들의 위선적인 행동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긴 옷을 입고 시장에서 문안을 받는 것을 즐겨하였는데, 이는 그들이 일반 대중과 자신들을 구별하고,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사람들의 찬사를 더 좋아하며,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을 더 기뻐하는 자들이었음을 증명합니다(요 12:43).
예수님께서는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시고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을 넣는가를 보셨습니다(41). 많은 부자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것을 보시고, 한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 것을 보셨습니다(4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라고 말씀하시며, 그 이유를 다른 사람들은 풍족한 중에 넣었지만, 이 과부는 가난한 중에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다고 하십니다(43-44).
예수님께서는 헌금의 많고 적음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진실성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가난한 과부가 낸 두 렙돈은 데나리온의 64분의 1에 해당하는 돈으로, 오늘날로 말하면 노동자의 하루 품삯을 10만 원으로 가정할 때 약 1,500원에 해당하는 적은 돈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녀가 누구보다 많이 넣었다고 말씀하신 것은(43), 그것이 그녀의 모든 소유였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자신의 모든 소유를 드린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세상의 어떤 가치보다도 귀중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도 바울은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하였습니다(빌 3:8). 하나님의 나라는 돈으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헌신할 줄 아는 믿음을 통해 세워집니다. 외식을 버리고 진실함을 회복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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