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마가복음 10:23-31 / 낙타와 바늘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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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원
댓글 0건 조회 48회 작성일 25-01-15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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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24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25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6 제자들이 매우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27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28 베드로가 여짜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31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 낙타와 바늘귀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예수님께서는 재물과 하나님의 나라 사이에서 우리에게 명확한 선택을 요구하십니다. 재물은 우리를 풍요롭게 할 수 있지만, 동시에 영적으로는 눈을 멀게 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물질적 풍요와 세속적 성공을 추구하며 하나님의 뜻과 멀어지지는 않았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낙타와 바늘귀의 비유는 물질주의와 탐심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삶을 촉구하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다고 말씀하십니다(23). 그러면 부자는 모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어렵다”고 하심으로써 그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열어둔 것처럼 말씀하고 계시지만,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고 다시 언급하심으로써 사실상 불가능함을 말씀하고 계신 듯합니다(25). 예수님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재물이 있는 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말씀하시면서, 낙타와 바늘귀를 비유적으로 사용하셨다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낙타는 구약에서 큰 재물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낙타는 값비싼 향품과 보석과 금은을 싣고 다닐 수 있는 운송수단이면서도(왕상10:2), 사람이 탈 수 있는 몇 안 되는 짐승 중의 하나였고, 선물할 수 있는 가장 값비싼 가축이기도 하였으며(창12:16), 부의 상징이기도 하였습니다(대하14:15, 사60:6). 스바 여왕이 솔로몬 왕을 찾아올 때에 많은 향품과 보석과 금은을 실었던 가축이 낙타였습니다(대하9:1). 그러므로 낙타는 전쟁에서의 주요 탈취 품목 중의 하나였습니다(렘49:29).

또한, 신약에서 예수님께서는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라고 하시며 바리새인들의 끝없는 탐심과 물질주의를 비판하는 데 비유되기도 하였습니다(마23:24). 그러한 면에서 볼 때 낙타는 물질적 탐심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다고 말씀하신 것은, ‘부유한 자’들을 특정적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물질을 탐하고 쫓아가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황금만능주의에 빠져서 돈이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재물이 있는 자’로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매우 놀라며 그렇다면 아무도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수군거립니다(26).

물질주의의 상징인 낙타와 함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바늘귀로 비유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 있다는 것을 말씀해 오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시기도 하셨습니다(눅17:21).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바늘귀로 비유하신 것은 재물을 가진 자의 관점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지만, 물질에 대한 욕심으로 재물만을 보고 쫓아가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바늘귀와 같이 희미하고 답답하게 여겨질 뿐입니다.

노아 시대에 방주의 문은 홍수가 나기 전, 하나님께서 닫기 전까지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누구나 들어갈 수 있고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적인 쾌락과 탐욕의 눈으로 보는 자들에게는 미련하고 어리석으며 답답한 것으로만 보였을 뿐이며, 하나님의 심판은 희미하기만 하였습니다. 결국, 재물에 대한 욕심은 영적인 눈을 멀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9:62).

이것은 물질에 대한 사람의 속성을 그대로 반영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손에 잡고 있지만 재물에 대한 욕심을 스스로 버리지 못하고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자들, 이것은 실상 모든 사람의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사람들 스스로 물질에 대한 욕심을 떨쳐 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27). 물질에 대한 욕심으로 인해 하나님의 나라를 깨닫지 못하는 영적인 맹인이 되어버린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참 빛’이 되신 주님을 보내주셨습니다(요1:9). 그리고 참 빛이 되신 주님 안에 들어온 자들에게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깨달아 볼 수 있는 영안을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라고 자부합니다(28). 그러나 아무도 예수님 앞에서 물질적인 것에 대하여 자부하지 못할 것입니다. 제자들 또한 서로 간의 높고 낮음을 다투며(9:34), 재물을 가지지 않았을 뿐 재물에 대한 욕심은 버리지 못했다는 것을 마리아의 향유 사건을 통해 보여주었습니다(마26:8). 재물이 없는 것과 재물에 대한 욕심이 없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자신하는 베드로의 말에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나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30). 예수님의 말씀은 세상의 모든 것보다 복음을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길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하고, 복음을 위해 고난과 박해를 받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 자신의 것을 희생할 수 있는 자에게 현세와 내세의 복을 허락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희생은 누구나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노라고 자부하고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예수님을 부인하는 연약함을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31). 믿음의 부요한 자는 믿음이 섰다고 자부하는 자가 아니라 끝없이 겸손함으로 믿음의 연단을 위해 주님 앞에 엎드리는 자입니다. 오늘도 내 속의 모든 탐심을 몰아내고 겸손히 말씀 앞에 엎드리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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