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마가복음 10:13-22 / 내가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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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원
댓글 0건 조회 39회 작성일 25-03-01 20:40

본문

13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16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17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19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20 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내가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 것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단순히 미래의 영광스러운 목적지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 속에서 믿음과 순종으로 경험할 수 있는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가장 소중히 여기며 살고 있습니까? 재물, 명예, 인간관계, 아니면 하나님의 뜻과 그분의 말씀입니까? 이 질문은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어린아이와 부자를 통해 우리에게 던지시는 중요한 도전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만져주시기를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자 제자들이 꾸짖습니다(13).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던 사람들을 배척하려 했던 제자들은 이제 예수님의 사역에 어린아이들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방해가 될 것이라고 단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태도에 노하십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들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시며 그 어린아이들에게 안수하시고 축복하십니다(14-16).

이 장면에서 어린아이의 순수한 믿음과 의존성을 통해 우리 역시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해야 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해나 노력에 의지하지 않고, 오직 그분의 말씀과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능력이나 자격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와 같은 순전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주어진다는 중요한 교훈을 가르쳐 줍니다.

어린아이는 스스로는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갖지 못하므로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또한, 부모가 제시한 것을 최선의 것으로 믿고 따라갑니다. 자신의 판단보다는 부모의 판단과 생각에 의존합니다. , 그러한 어린아이의 성향은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수납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를 통해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가를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은 주신 말씀을 자신의 유익에 따라 이해하려 하거나,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하기보다는 진리의 말씀을 조건 없이 아멘으로 수납하는 자세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를 최고의 것으로 생각하고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나의 지식과 이성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나라를 판단하려는 태도는 불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멘으로 수납하는 자에게 능력의 말씀으로 경험되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길에서 나가실 때에 한 부자가 달려와 꿇어 앉아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묻습니다(17).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정죄를 받고 있는 예수님을 찾아와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무릎을 꿇고 영생에 대하여 묻는다는 것은 매우 용감하고 자신의 사회적 지위조차 버린 믿음의 행위처럼 보입니다(18).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가 재물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이르지 못할 것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아무리 계명을 지키는 자라도 자기를 부인하지 않는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 아니라 종교적인 사람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부자에게 먼저 계명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계명을 지켰는지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가 스스로 종교적인 행위에서 벗어나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참 제자가 되는 길을 깨닫도록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이 부자의 모습은 현대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재물과 명예를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 삶은 결국 영생의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며, 우리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결단을 촉구합니다. 참된 제자의 길은 우리의 자아를 내려놓고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헌신과 순종으로 걸어가는 길임을 깨닫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인간관계의 계명인 6계명부터 9계명을 지켰는지를 물으십니다(19). 그러자 부자는 자신 있게 그러한 계명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켰다고 대답합니다(2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21). 예수님께서는 그가 가장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는 비록 많은 계명들을 지키며 살았고, 영생을 구하는 것으로 보아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물에 대한 욕심으로 인해 더욱더 가치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얻지 못하게 됩니다(2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재물을 포기하고 모든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구제 행위를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자기 부인입니다. ,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과 제자들에게 말씀해 오셨던 것처럼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는 말씀을 부자의 현실에 적용하신 것입니다(8:34).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보다 자신이 가진 재물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부자에게는 오히려 그가 사랑하는 재물이 영생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참된 제자로서 내가 가장 가치 있게 여겨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단순히 미래에 도달할 어떤 장소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 속에서 믿음과 순종으로 경험되어야 할 현실입니다.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고 우선순위로 삼아야 할 가치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재물, 명예, 인간적 욕망이 하나님의 나라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날마다 하나님께 우리의 삶의 주권을 맡기며, 참된 믿음으로 살아가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러한 결단과 순종을 통해 우리의 삶 속에 임하고, 우리를 통해 세상에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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