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말라기 4:1-6 / 심판과 구원의 날이 이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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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0건 조회 83회 작성일 25-04-03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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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3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내가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4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령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 심판과 구원의 날이 이르리라
세상이 점점 불공정해 보입니다. 악을 행하는 자는 오히려 번성하고, 정직하게 살려는 자는 손해를 보는 것 같습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과연 무슨 유익이 있을까, 질문이 마음에 쌓일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따르며 순종하는 삶이 때로는 외롭고 어리석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그러한 현실 앞에서 흔들리는 우리의 마음을 향해 분명히 말합니다. 심판과 구원의 날은 반드시 오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결코 잊히지 않습니다.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라고 선언하십니다. 백성들은 신앙의 헛됨과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아무런 유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고 항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증거로 교만한 자가 복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 것을 말하며 불의와 불법을 정당화하려고 변명하였습니다(3:14-15).
우리는 이 세상 속에서 구별된 백성으로 살지 못한 것을 "모두들 그렇게 하는데 나만 손해 볼 수 없었다"고 하며, 불법과 불의를 변명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러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가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며,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않을 것이라고 하십니다(1).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조롱하며(2:17), 믿음이 허망하다고 비웃었던 그들에게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용광로 불 같은 날"이란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과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의 시기를 말하고 있습니다(1, 5).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은 의인과 악인을 명확히 분별하였습니다. 믿는 자는 의인으로 인정받고, 믿지 않는 자는 악인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는 곧 심판은 아직 이르지 않았으나, 이미 재판관에 의해 불 심판을 확정받은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인, 곧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에 대하여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고 말씀하십니다(2). "공의로운 해"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신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완전한 회복과 구원을 주실 것을 예고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라고 전하였습니다(고후 2:16). 이미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사망에 이를 자와 생명에 이를 자가 확정되었음을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에게는 불 타는 심판을 내리시겠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공의로운 해에서 나오는 치료하는 광선으로 온전케 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하며 믿음을 헛된 것이라고 하던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 속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고 존중하며 불법과 불의에 타협하지 않음으로 겪었던 모든 고난의 눈물과 상처를 치료해 주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어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억압받고 자유롭지 못했던 제한된 삶에서는 결코 얻지 못했던 참 자유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한때는 악인이 의인을 짓밟고 아프게 했지만, 이제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는 날에는 악인이 심판을 받고, 의인이 받는 고난이 오히려 영광의 면류관이 되었음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악인들의 번성을 보며 그들 앞에 절하고 그들을 두려워하였지만, 결국 하나님의 공의 앞에 악인들은 의인들의 발바닥 밑에 재와 같은 존재에 불과할 뿐입니다(3).
하나님께서는 만군의 하나님, 즉 모든 만물과 역사를 다스리시는 주권자의 이름으로 선포하십니다. 위선과 거짓과 불신을 버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였습니다(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믿는 자에게는 능력이 된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고, 지금 불신의 시대를 이겨내야 합니다. 지금은 세상과 타협하고 손잡으며 불의와 불법이 주는 혜택을 당연한 자신의 몫으로 여기며 춤을 추지만,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는 오히려 그들의 노래와 춤이 눈물과 고통의 몸짓이 될 것입니다.
끝까지 믿음으로 견딘 자를 모든 이방인들이 복되다 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입니다(3:12).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히 3:14). 하나님께서는 그날이 이르기까지 "모세에게 명령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고 하십니다(4). 종 되었던 땅 애굽에서 이끌어내시고 언약을 주신 때를 기억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고통받던 시절 주셨던 말씀은 큰 소망과 모든 고통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었습니다. 그래서 고통 중에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심을 확신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는 곧 그때와 같이 구원의 확신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교만한 자가 복되고 악인이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 것을 보며, 믿음이 헛됨을 말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는 자만이 정한 때에 이르러 말씀을 주실 때에 돌이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라"고 하십니다(5).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을 갈멜산에서 죽인 능력의 사자입니다. 엘리야의 때는 여호와의 신앙과 바알에 대한 신앙의 경계가 불분명해진 시대였습니다.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들을 기손 시내로 내려가 죽임으로써 하나님만이 살아계신 참 신이심을 선포하였습니다(왕상 18:40). 엘리야를 통해서 바알을 섬겼던 행위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온 이스라엘의 조상들과 같이 언약관계를 회복하지 않고는 크고 두려운 날의 심판을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6).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와 같이 언약을 기억하며 주께 돌아올 자들을 위해 세례 요한을 보내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제사장 사가랴에게 이러한 세례 요한에 대하여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고 예언하였습니다(눅 1:17). 지금 악인들의 번성을 보며 믿음의 헛됨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가까이 이르렀음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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