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역자이야기

지문 / 안병찬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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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5회 작성일 25-04-20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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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주름 속에 잠긴 날들 
층층이 쌓여  패각처럼 붙은 손톱 밑에
오래전에 바다가 있었다는 알았다.

소리없이 뺨을 타고 가슴에 고인 물결
남모르게 닦아내었을 손가락 끝엔
몸을 휘감던 바다의 흔적이
딱딱한 돌기 되어 있다는 알았다.
차갑게 굳어졌던 동태의 지느러미가 
갯내음에 싱싱하게 파닥거리는
밥상 위에 올려 국그릇 속에
소금 뿌려가며 휘휘 소용돌이 만들던
어머니 손가락
지워내려 해도 지워지지 않을 아픔이
그릇마다 짠내음으로 묻어나던  

그때부터 손가락 끝에도 돌기가 생겼을까
울컥, 가슴으로 바닷물이 밀려온다.

 『詩. 지문』 전문

 

물결이 밀려오듯, 오래전의 편의 시가 가슴을 두드린다.
어머니가 천국가신 , 다시 읽을 때마다 새삼스럽고 낯설게 아프다.
어머니가 땅에 계실 , 어머니의 주름진 손끝과 손톱 밑에 스며 있던 인생의 흔적을 바라보며 내려간 글이었다.
지문 끝에서 번져 나온 바다의 기억은, 오래된 조개껍데기처럼 마음 깊은 곳에 층층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어머니의 손끝에 남아 있던 패각의 단단한 흔적은 노동으로 인해 생긴 상처 같았지만,
안에는 말없이 견딘 세월과, 참아온 마음들이 겹겹이 배어 있었다.
그것은 사랑으로 버무려진 인내와 희생의 형상이었다.
시를 당시엔 그저 삶의 고단함을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깊이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손끝에 새겨져 있던 삶의 흔적은 어머니가 걸어온 생의 바다였고, 세대가 신음하며 건너온 광야였다.

밥상 , 국그릇을 마주할 때면 어김없이 어머니의 손이 떠오른다.
특별한 날도, 평범한 날도 아닌, 언제나처럼 조용히 앉아 국을 휘젓던 어머니.
손끝이 국물 속에서 소용돌이를 그리며, 속에 하나씩 따뜻함을 녹여 넣고 계셨다.
지금은 그때의 일이 기억 속에서 지워져 가며 희미해지고 있다.
눈물은 이상 뺨을 타고 흐르지 않는다. 마음속에서만, 소리 없이 고여 뿐이다.

나는 시를 다시 읽으며 성경 속의 여인을 떠올린다.
룻기의 나오미. 남편과 아들을 잃고, 삶의 모든 기둥이 무너진 자리에서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그녀.
자신을마라(쓰다)’ 불러달라고 말했던 마음속에는, 말없이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으리라( 1:20).
그리고 떨리는 손끝마다, 살아낸 세월의 단단한 껍질이 덧씌워져 있었을 것이다.
고통은 흔적을 남기고, 사랑은 흔적을 끝내 껴안는다.

어머니의 손가락 끝에 박여 있던 돌기들도 고된 시간 속에서 스며든 염려와 기도의 응어리였다.
밥상 국그릇마다 배어 있던 짠내는, 눈물로 끓여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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