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역자이야기

나의 엄마 / 김숙자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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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원
댓글 0건 조회 76회 작성일 25-02-22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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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의 체코 생활을 미련 없이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올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평생 고생하시고 홀로계신 엄마의 삶을 가까이서 함께 하고 싶어서였다. 

엄마는 40대 초반에 혼자가 되셨지만 우리 칠 남매만 바라보시며 93년 인생 여정을 강인하고 꿋꿋하게 살아내셨다. 그런 엄마의 삶에 외로움을 덜어드리는 착한 딸이 되고 싶었다.

지난 3년여의 코로나 기간을 겪으면서 부모님들이 돌아가셔도 임종도 지키지도 못하고 비행기티켓을 구해서 온다 해도 격리 기간이 있어서 함께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것은 내게 인생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발단이 되었고, 결국 인생의 우선순위를 바꾸어 살아가겠노라 다짐하고 귀국을 결행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엄마 곁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처음에는 마냥 행복했다. 맛있는 것 해드리고, 한의원도 함께 가서 같은 침대에 나란히 누워 침도 맞고, 자매들과 함께 여행도 가서 바람도 쐬어 드렸다. 그리고 집에 낡은 씽크대며, 화장실도 땀을 뻘뻘 흘리며 고쳐드리고 가정예배도 드리고, 휠체어를 차에 싣고 산책도 다녔다. 빠르게 지나가는 세월 속에서 내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나는 엄마를 밀쳐놓았다. 그런 엄마의 마음이 나로 인해 조금이나마 흡족해진다면 엄마가 원하는 것은 모두 다 해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했었다.

어느 날, 다리에 힘이 없으신 엄마가 대문 앞에서 넘어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진단결과 갈비뼈 골절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엄마의 회복이 우선이었다. 지역을 불문하고 우리 칠남매는 엄마의 병간호를 나누어서 담당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을 계기로 모든 형제들이 엄마와 먹고 자고 씻겨 드리며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직 믿음이 없는 오빠도 있다. 그리고 믿음이 깊지 않는 올케들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동생으로서 최선의 마음으로 나름대로의 풍성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었다. 

그러나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가며 나의 그런 생각이 빗나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엄마는 점점 간섭이 많아지시고, 불만도 점차 늘어가며 어린 시절 나를 대하셨던 것처럼 화난 모습을 자주 보이셨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며 우리 엄마가 마음도 몸도 아프셔서 하는 행동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내가 꿈꿔왔던 엄마와의 아름다운 동행이 깨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나에게 상처가 되어 돌아왔다.

그러나 나 역시도 엄마의 삶을 있는 그대로 봐 드리며 마음을 살펴 드리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의견을 묻지 않고 내 기준으로 청소하고 불필요하다고 생각한 물건들과 음식을 버렸던 것이다.

 때 묻고 오래된 것은 내게 정리되어야 할 것이지만 엄마에겐 더 오래도록 곁에 두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했다. 그로인해 빚어지는 나와의 갈등이 엄마에게도 상처가 되었을 것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렇다. 그 어려운 여건 가운데에서도 오로지 자식들밖에 모르고 평생 손이 닳도록 일만 하신 엄마, 너희들은 배워야 한다고 진자리 마른자리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하며 억척스럽게 살아오신 우리엄마였다. 

그런 엄마를 늘 가까이서 지켜보았던 딸들도, 그리도 아끼셨던 아들들도 누구 하나 엄마의 외롭고 힘들었을 굴곡진 아픔의 시간과 몰래 흘리신 눈물의 파편들을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게 오롯이 자식들만 바라보며 자식들을 향한 사랑으로 모든 것을 감내하며 살아오신 엄마를, 나는 마음으로 이해하며 포용하지 못하고 배려하지 못했다. 내가 마주한 것은 엄마의 고집스럽고 불편해진 모습이 아니라 내 이기심이었다.

‘왜 나만 짊어지려 하지?’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스칠 때가 있었다. 체코에서 귀국한 후 얼마 되지 않은 돌봄의 시간동안 나는 더없이 착한 딸이라는 남들이 달아 준 훈장 같은 프레임에 갇혀 내 스스로를 그 좁은 틈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모습이었다.

지금까지도 엄마는 불편한 몸을 힘겹게 움직이시면서 자식들한테 피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며 음식을 절제하시고 나름대로 온 힘을 쏟고 계신다. 자식을 향한 조건 없는 사랑으로 희생해 오신 엄마, 늙으신 몸까지도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를 바라시는 엄마, 그런 엄마 앞에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삶을 핑계하고 있다.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나는 엄마처럼 살 자신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강하고 담대하게 살아내신 엄마를 더욱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엄마처럼 살 자신이 없음에도 때때로 엄마의 피가 내 몸속에 흐르고 있음을 느낀다. 무엇이든 두려움 없이 부딪혀보는 개척정신과 도전정신, 진정성 있는 삶을 일구어 나가려는 성실함을 엄마에게 물려받았다는 생각이 들어 감사하다.

엄마와 시간을 보내며 나는 나도 모르게 내 노년을 그리고 있다. 같은 말이라도 부드럽고 표정은 온화하게, 자식의 삶의 자리를 존중하며 간섭하지 않기를, 고마우면 고맙다, 미안하면 미안하다 말해주고,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해주기, 내 노년이 물질보다 자식을 배려하는 마음이 모자라지 않기를 바라며 연습하고 있다. 내 자녀들에게 나는 그런 엄마가 되기를 바란다.

“엄마 사랑해!”

“사랑하는 우리 엄마 집사님에게 영생의 소망과 세상이 줄 수 없는 주님의 평안이 마지막 때까지 가득하길 딸이 기도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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