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역자이야기

도시락을 들고 뛰신 어머니 / 김봉연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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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원
댓글 0건 조회 71회 작성일 25-02-22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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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지금으로부터 60년도 더 된 이야기. 내가 중학교 시절. 그때 우리 집은  가난해서 도시락 반찬이 매일 똑 같았다. 김치나 짠지 같은 것이었다. 친구들의 도시락을 보면 계란도 있고, 고기도 있는데 나는 매일 똑같은 반찬이었다. 

‘나도 맛있는 반찬 좀 싸주었으면…’ 

속으로 늘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 나는 어느 날 반란을 일으켰다. 어머니는 새벽 일찍 밥을 하셔서 도시락을 정성껏 싸 놓으셨다. 학교에 가려고 가방을 챙기며 도시락을 보는 순간, 반찬이 또 김치뿐인 걸 보며 도시락을 놔둔 채로 가방만 들고 집을 나셨다. 가방이 훨씬 가벼워서 발걸음이 빨랐다. 상도동에서 노량진까지 전차를 타려면 30분 정도 걸어가야 했다. 집 앞에서 버스가 있지만 버스는 2원 50전이고 전차는 1원 50전이라 그 1원을 아끼려고 먼 길을 걸어가곤 했다. 전차는 지금의 지하철과는 다르다. 지상으로 다니는 전기차인데, 중앙차선에 선로가 깔려 있어서 인도(人道)에 줄을 서 있다가 전차가 오면 도로 중앙으로 가서 올라탔다. 한참을 기다려 거의 탈 때가 다 되었는데 저쪽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헐레벌떡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분은 바로 나의 어머니였다. 한 손에는 도시락을 들고 계셨다. 설거지를 하고 들어온 어머니는 책상 위에 놓인 도시락을 보고는 내가 도시락을 깜빡 잊고 안 가지고 간 줄 알고 ‘점심을 굶으면 어쩌나?’하는 마음에 도시락을 들고 그 먼 거리를 뛰어오신 것이다. 나는 머리를 한 방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도시락 안 가지고 간다는 말 한마디만 했으면 어머니가 그 가쁜 숨을 몰아쉬며 뛰어오지 않아도 될 것을…. 나는 반찬이 맘에 안 들어서 일부러 도시락을 안 가지고 왔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도시락을 받아서 가방에 넣으며 혼자 속울음을 울었다.

“어머니, 잘못했어요. 미안해요.” 

도시락을 건네주고 힘없이 걸어가시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혼잣말을 했다. 그 후로 다시는 도시락 반찬 투정을 하지 않았다.

나도 후에 엄마가 되었다. 아들이 초등학교 때 일주일에 두 번 도시락을 가지고 가는 때였다. 아들은 편식을 했다. 그러니 도시락을 가지고 학교에 가서 제대로 밥을 먹을까 싶어 김밥을 싸 주기로 했다. 김밥에 들어간 것은 시금치나 당근도 가리지 않고 잘 먹었기 때문이다. 계란, 단무지, 시금치, 쏘시지, 당근 등을 골고루 먹을 수 있으니 편식을 하는 아들에게는 아주 좋은 식단이라 할 수 있다. 

아들은 김밥 먹는 것이 좋아서 도시락 가지고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얼마나 맛있고 좋았는지 “엄마, 나 대학교 다닐 때도 매일 김밥 싸줘.”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도시락을 안 가지고 간다며 가방만 들고 학교에 가는 것이 아닌가? 나도 내 어머니처럼 걱정이 되어 도시락을 들고 학교에 갔다. 알고 보니 매일 김밥을 싸오는 것을 부러워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선생님께서 아들에게 “김밥은 소풍갈 때나 싸오고 평소에는 친구들처럼 그냥 도시락을 싸오렴”하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그 후론 다른 아이들처럼 밥과 반찬을 담은 도시락을 갖고 학교에 다녔다.    

어머니는 삶의 막바지에 막내인 나와 함께 사시다가 95세에 조용히 마지막 숨을 거두셨다. 어머니 가신지도 20년이 지났다. 지금도 도시락을 들고 뛰어오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어머니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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