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울 점이 많고, 때로는 황당하고 그렇지만 멋있고 또 멋있는 친구. 하나뿐이고, 가장 좋아했고 좋아하고 좋아할 우리 할머니를 소개한다.
우리 할머니는 요리를 잘하고, TV보단 패드를 더 좋아하시고, 화장대 아래 서랍에는 사탕과 어린 내가 주었을 편지가 들어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아마 내가 가장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그럼에도 모르는 게 더 많을 우리 할머니. 할머니는 자기 전에 항상 이야기를 하다가 주무시는데 그 이야기는 오늘 아침 작은 민들레의 이야기일 때도 있고, 유튜브에서 만난 사람의 이야기, 드라마 주인공의 이야기, 또 누군지 모를 사람의 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다. 자기 전 나는 누워서 핸드폰을 하느라 할머니의 이야기를 흘려듣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가끔 마당을 보다가, 유튜브를 보다가, TV를 보다가. 할머니의 이야기들이 생각나는 때가 많다. 그런데 많은 이야기를 하시지만 정작 할머니는 본인의 이야기는 잘 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가끔 고집이 센 할머니도, 기분이 좋은 할머니도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나는 잘 모른다. 보지도 않은 저녁 드라마의 주인공보다도 할머니에 대해 더 잘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우리 할머니는 배울 점이 많고 끈기 있으시고 똑똑하시다. 때로는 끈기 고집이랑 혼돈스러울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먼저 포기하는 게 더 편하다. 할머니의 고집은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만큼 할머니의 끈기는 대단하다.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쌀알을 다 흩트려 놓아도 다 모아주시고, 제 눈에는 다 똑같은 색으로 보여 포기한 퍼즐 속 하늘도 다 맞추신다. 할머니의 패드 속 가장 많은 시간을 사용하는 건 퍼즐 앱일 것 같다. 가끔 할머니가 하는 퍼즐을 살펴보면 그 퍼즐을 맞추는데 걸리는 시간이 400시간 가까이 갈 때도 있다. 그럼에도 마지막 조각 까지 맞추시는걸 보면 신기하다. 나는 같이 하다가도 나무 몇 그루 맞추다 체념할 때가 많았다.
지금의 나를 만든 과정을 100이라고 한다면 나에게 80은 할머니이시다. 나의 성격. 말투, 작은 습관도 할머니와 닮은 면이 있다. 내가 생각하기엔 그렇다. 가끔 엄마와 이야기를 할 때면, 내가 엄마와 같이 있었다면 지금의 나와 같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엄마와 살았다면 별로였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그냥 지금과는 다른 나였을 것이라는 의미다. 짐작컨대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할머니가 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해 왔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멋진 우리 할머니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어릴 적 할머니를 멋있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별게 아니었을 수도 있다. 맛있는 밥을 주어서. 무서운 바퀴벌레를 잡아주어서. 내가 작은 메주를 하나 만들 동안 커다란 메주를 많이 만들어서 여러 가지 것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정작 할머니를 멋지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나도 할머니도 모른다. 그만큼 할머니는 내 삶의 깊은 샘 같은 분이다.
지금의 나는 누군가 보고 있던 안 보고 있던 언제든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할머니가 멋있다고 느낄 때가 많다. 그것이 아침밥을 만들고, 새벽기도회를 가고 또 식물을 심고, 꽃 사진을 찍고. 설령 누워서 TV로 드라마를 보더라도. 할머니는 항상 본인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만히 보면 할머니는 사진에는 재주가 없으시다. 그것이 찍히는 일이든 찍는 일이던지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키티 인형보다 훨씬 사랑하는 우리 할머니의 웃음을 사진에 더 많이 담아두고 싶다. 삼촌은 할머니를 몰래 찍는 것이 도찰이라고 하지만 할머니의 미소는 몰래 찍어야 멋스럽다. 그게 더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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