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바람이 부는 냄새가 좋을 때가 있습니다. 저는 그 때를 열두 달 중에 제일 좋아하지요. 그 바람 냄새가 나는 그 때가 바로 나락 말리던 때입니다. 강진 집 대문 앞에 예전에는 넓은 공터가 있었어요. 그 공터에 바람 냄새가 따뜻하게 좋은 그 때에 어김없이 나락을 넓게 펼쳐두고 뭉툭하게 생긴 도구를 가지고 지그재그 모냥을 만드시며 나락을 정성껏 말리시던 할아버지가 계셨습니다. 이미 마당에도 옥상에도 한 가득 널어둔 나락을 시간되면 휘휘 방향 바꿔주며 말리셨어요. 그 때의 할아버지가 아직도 눈앞에 고대로 그려집니다.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중에 손가락 하나를 잃으셨고 한 손가락은 굽어져서 남들이 보기에 불편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손으로 우리 할머니 힘드실까봐 마당 한 귀퉁이 당신자리에 앉아 온갖 귀찮은 것들을 다 손질해 두시고 나무를 깎아서 새도 맹그시고 호롱불도 이쁘게 만드시고 할머니 밀대로 쓰라고 방망이도 맹그시고 두 분 커플템으로 사용하실 여름에 시원하게 누우실 구멍뽕뽕 뚫린 목침도 만드시고! 온갖 희귀한 모냥들의 멋진 것들을 다아 만드셨지요. 아주 귀한 손입니다. 그리 깎고 다듬고 혹여 손에 가시라도 박힐까봐 사포로 밀고 또 밀어서 우리 할아버지가 젤 좋아하는 니스 잔뜩 발라서 짜잔!!! 만들어 두신 그 많은 보물들을 제가 잘 간직하며 잘 사용하고 있답니다.
할아버지는 자전거를 아주 잘 타셨습니다. 슁슁 어디든 할아버지 자전거 뒤에 타고 강진을 돌아다녔지요. 우리 할머니를 뒤에 태우시고 어디든 모시고 다니셨어요. 산도 얼마나 잘 타시는지 산도라지 쓴 맛 좋아하는 정현이 준다고 산 돌아다니시면서 도라지 캐다가 손수 다 손질해 두셨지요.
할아버지 돌아가신 후에 할머니가 당신을 한 송이 장미라고 부르셨대서 얼마나 놀렸게요. 느그 할아버지가 뭐시가 잘 생겼어야! 근디 잘 생기기는 했는 갑드라. 사람들이 그르드라. 할머니 지내시는 방 한쪽 벽에는 우리 할아버지 사진이 걸려있습니다. 돌아가신 그 때의 할아버지 모습으로요. 그 옆에는 몇 년 전 준비해 둔 우리 할머니 천국 가시는 날 사용할 사진이 나란히 있습니다. 다정하게 함께 웃고 계시지요. 누우면 젤 잘 보이는 자리에 두고 우리 할머니는 매일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기억하고 계시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항상 작업복 입고 고무신 신고 자전거 타고 날아다니시던 우리 할아버지께서 여름이면 빳빳하게 손질된 모시옷을 입고 애껴둔 구두신고 가방 들고 교회 가셨어요. 여름에 장로님 모시옷보고 할아버지 생각나서 눈물을 또 찔끔 흘렸지요.
그런 할아버지를 진짜 겁나게 사랑하던 한 남자가 있었어요. 제 동생 이정호지요. 할아버지 껌딱지였어요. 할아버지랑 전생이 있다면 이루지 못한 사랑을 했던 연인이었던 것처럼 서로 사랑했더래요. 그런 할아버지가 다 알고 계셨을 겁니다. 당신이 그리 이뻐한 손주 정호가 온 가족이 함께 할아버지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거라는 걸요. 보고 배운 대로 하나님 사랑하는 찬양할 그 모습을 아셨을 겝니다. 곧 할아버지 생신이 다가옵니다. 매년 할아버지 생신이면 한 달을 울고 지내던 이정호도 이번에는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며 감사하며 할아버지를 기억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생전에 한 번도 못해본 말입니다. 사랑해요. 우리 할아버지 정일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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