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묘소가 있는 일산을 향해 가는 차에 앉으며 유골이 담긴 나무상자를 내 무릎 위에 놓았다. 흰 보자기로 싼 네모난 것이 내 몸에 닿았을 때, 아직도 따뜻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마치 현정이가 내 무릎 위에 앉아 있기라도 하듯이.
“고모 무릎이 따뜻해.” 하더니, 이생에서 표현하지 못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듯했다.
나는 돌이 지났을 무렵에 열이 펄펄 나며 밤새 앓았지요. 그리고 새벽에야 영등포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갔어요. 하루 정도 입원치료 하고 집으로 왔는데, 점점 커가면서 다른 아이들처럼 말이나 생각이 자라지 않는 것을 알고 식구들은 걱정을 했어요.
그래도 고모는 내가 언니보다 더 예쁘다며 맘에 드는 옷을 사다 주기도 했죠. 어느 여름날 새벽녘에 폭우가 쏟아져 우리 집 대문으로 물이 넘쳐 들어와 방안에까지 물이 차올 때, 고모는 방바닥에 멍하니 누워 있는 나를 제일 먼저 안고 밖으로 나갔지요. 또 아버지가 술에 취해 들어와 술주정을 심하게 해서, 이를 말려 줄 외할아버지를 모시러 옆 동네에 갈 때도 고모는 밤길이 무섭다며 나를 등에 업고 간적이 있어요. 그 때 고모의 등이 지금 고모 무릎처럼 따뜻했던 것 같아요.
할머니는 나를 얼마나 예뻐해 주셨는지 몰라요. 남양주에서 베 짜는 공장을 하고 있을 때도, 서울에 나갈 때마다 나를 데리고 다니셨지요.
나를 공부시키려고 특수학교에 보내면서 엄마가 많이 고생한 것도 알아요. 혼자서는 아무데도 오갈 수 없는 나를 학교에 데리고 다니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학교에 가보니 나보다 더 바보스럽고 멍청한 아이들이 많다는 것도 알았지요. 제대로 몸도 못가누고, 말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는 아이들과 일 년 정도 생활 하다가 엄마가 힘에 부쳐서 학교 가는 것도 그만두었어요. 사람들은 왜 공부를 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나는 학교에 안 가고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제일 즐겁고 좋은데요.
내 동생은 호주로 어학연수를 갔다가 거기서 사귄 여자와 결혼하여 호주로 떠나갔어요. 그래서 동생 덕분에 호주 여행도 했지요. 엄마, 언니, 조카들과 비행기 타고 호주에 가서 멋진 관광지들을 구경했어요. 그러고 보면 난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요. 언니는 결혼하여 딸 아들 낳아 기르며 잘 살고 있어요.
아버지는 나를 무척 안쓰러워하셨지요. 술을 좋아해서 시간만 있으면 혼자서도 술을 드셨고, 술에 취하면 나를 무릎에 앉히고 “현정아, 현정아.” 부르며 볼에 입을 맞추고는 우셨지요. 평상시에는 무뚝뚝한 아버지였지만 술을 드시면 나를 더 예뻐해 주셨어요. 나 때문에 오래오래 살아야 한다더니, 나 때문에 병이 나서 십년 전에 먼 곳으로 가셨어요.
나를 그렇게 사랑하시던 할머니도 치매에 걸려 고생하시다가, 아버지가 먼저 간 줄도 모른 채 몇 달 후에 뒤따라가시고 말았어요. 엄마와 둘이만 남았죠. 이젠 엄마도 몸이 약해지고 힘이 들어서 나를 돌볼 수가 없다고 교회에서 운영하는 보호시설에 맡겼어요.
나를 아끼고 예뻐해 주시던 아버지와 할머니가 점점 더 보고 싶어지네요. 이 못난 나를 45년간 돌봐 주신 엄마, 그 엄마는 이제 혼자 살아가기도 힘이 드는데 나라도 짐을 덜어주어야 할 것 같아요. 할머니와 아버지 만나러 갈래요. 거기서는 장애자로 살지 않겠지요? 교회에서 목사님이 말씀하셨어요. 거기는 눈물도 없고, 아프지도 않다고요.
현정이의 울음 섞인 목소리는 이제 더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장례식은 간소하게 치러졌다. 발인 예배를 인도하신 시설장 목사님은 지체장애자셨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는 성경의 한 구절을 읽었다. 장애를 가진 것이 누구의 죄도 아니요, 그를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나타내려는 뜻이라 했다. 현정이의 삶이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로 하여금 지극히 작은 현정이에게 선(善)을 베풀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란다. 순간, 내 마음이 찔끔했다.
담임을 맡았던 선생님이 조사(弔詞)를 읽었다. “현정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이름이 뭐냐고 물었더니, ‘현정이’라고 대답했습니다”는 말로 시작된 조사를 들으며, 나도 그만 눈시울이 젖어 드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화장을 한 유골은 현정이를 아끼던 할머니 옆에 묻어주자고 했다. 나무 상자에 담아 보자기에 싸서 내가 들었다. 눈물을 글썽이던 올케도 마음을 다잡은 듯 말했다. “잘 갔을 거야. 편하고 더 좋은 곳으로.”
큰 조카는 현정이의 유골을 일산에 있는 할머니 옆에 묻고는 호주에서 오는 동생을 데리러 인천 공항으로 마중 간다고 한다. 누나의 죽음을 애도하려고, 아니 불편한 몸으로 가련한 딸을 먼저 보낸 어머니를 위로하려고, 저 파란 하늘 길을 날아오고 있는 것이다.
가을 하늘이 참 푸르고 깊다. 현정이의 맑은 영혼이 하늘로 날아오르면 저처럼 푸른빛을 띄울까.
내 무릎 위에 있는 상자의 따뜻함이 점점 식어지고 있다.
(제8회 전국 장애인 문학공모전 장려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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