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21
처음 지인의 소개로 이슬람지역 선교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선교단체에서 선교교육을 받았다. 초교파적으로 모여서 선교교육을 받는다는 것이 낯설고 조금은 거부감도 들었던 터라 마음을 집중해서 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선교 교육을 마친 후, 2018년 이스라엘 선교를 떠나게 되었다.
어렸을 때에 외가에 가서 자는 것도 힘들었던 내게 해외로 나간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일본에 배를 타고 여행한 적은 있지만 항공편을 이용해 먼 곳으로 선교여행을 떠나가는 처음이었다. 그런데 모든 분들의 기도와 격려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가게 되었다.
선교단체는 이슬람을 목적으로 선교를 하는 단체였다. 준비하고 출국하는 날 남편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버스 정류장에서 떠나지 못하고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어디든 혼자 가는 것을 싫어하고, 또 혼자 가본 적도 없었던 나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남편은 마음을 놓지 못했다. 남편에게 선교여행을 위해 잊지 말고 기도해 줄 것을 부탁하며 버스에 올랐다.
부천에 도착한 후, 전국 각지에서 모인 이스라엘 선교팀은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교제하고 말씀과 기도로 준비했다. 다음날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인천공항에 도착해 비행기를 탔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낯설었지만 선교라는 사명감으로 모인 전국 교회의 성도들.…. 그렇게 캄캄한 밤중에 벤구리온 국제공항에 도착해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에 올랐고, 중간에 검문소도 거쳐야 했다. 계속 버스를 타고 예루살렘에 있는 숙소에 도착해 씻은 후 잠이 들었다. 그렇게 이스라엘에서의 첫 날을 보내게 되었다.
짧은 밤이었지만 피곤한 탓인지 깊게 잔 듯했다. 일어나 예배드리고 예수님 탄생 교회를 방문한 후, 예루살렘으로 가서 간단히 식사 후 숙소로 돌아와 오리엔테이션 후에 룸메이트를 정하고 소개도 하며 이튿날을 보냈다. 숙소는 베들레헴 이었다. 깨끗하지도 않고 음식도 입맛에 맞지 않고 그릇도 물이 묻은 채로 음식을 담아내는 등 비위생적이었지만 단순한 여행이 아닌 선교였기에 스스로를 격려하려고 노력했다. 두벌 옷만으로 수많은 일정을 걸어서 소화하며 헐벗고 죽음 같은 고난을 당했던 바울에 비하면 호사스러운 여정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의 선교방식은 팀별로 지역을 정해주면 정말 간단한 소지품과 함께 가방에 매고 팔레스타인 가정을 방문해 복음을 전하며 그 가정에서 하룻밤을 묵는 방식이었다. 가는 차 안에서 밖을 보니 정말 척박한 땅이었다. 돌이 많고 나무는 키가 매우 작고 우리나라처럼 산이 없는 그야말로 삭막한 광야뿐이었다. 예수님이 이 동네에서 태어나셨다. 우리를 위해 오셨다.
밤에 방문한 가족들에게 맛사지를 해주면서 복음을 전했다. 방문한 가정은 이슬람이고 가족의 구성은 전통적인 일부다처제였다. 첫 번째 부인집 옆에는 두 번째, 세 번째 부인의 집도 나란히 있었다. 가장인 남편은 우리와 같이 있다가 갑자기 보이지 않았는데 다른 부인 집으로 간 것 같았다. 첫 번째 부인의 한숨을 보았다. 지금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하다. 아침 대접을 받고 아쉬운 작별을 하고 돌아왔다.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마을 지역을 정해주면 경비를 조금 가지고 팀별로 알아서 출발해야 했다. 차를 타고 찾아가고 또 숙소로 돌아오고. 다음날은 이스라엘 사람의 집을 방문했다. 이스라엘은 유대교이다. 젊은 가정집을 만나 복음을 제시하니 조금은 좋은 반응을 보여줬는데 집을 둘러보니 구약 성경책이 있었다. 일행 중에 영어를 전공한 분이 있었는데 책을 알아보고는 복음을 더 열심히 전하니 어머니가 미국계 이스라엘 분인데 믿는 분이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복음을 제시하고 친구 분을 소개해줘서 그 집으로 갔는데 반갑고 정성스럽게 우리를 받아주고 잠도 재워주었다. 밤에 아이들에게 복음을 제시하고는 아쉬움을 남기고 헤어졌다.
다음 날은 텔아비브에서 권서 사역을 했다. 날은 덥고 건조해 숨이 막힐 것 같지만 지중해에서 해수욕장에서 전도지를 나눠주었다. 다음날 전해들은 얘기는 전도지를 받은 분들 중에서 네 분에게 전화가 왔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씨는 뿌렸으니 그 후에는 하나님께서 하시리라 믿었다. 얼마나 걸었는지 내 평생 그렇게 건조하고 더운 것은 처음이었다. 발목과 손목은 지금도 새까맣다. 세월이 흘러도 없어지지가 않는다.
선교일정 이후, 이틀은 투어를 했다. 예수님이 기도하셨던 감람산과 금식 후 사탄에게 시험 받은 장소로 추정된 곳, 그리고 통곡의 벽과 요단강을 둘러보았다. 요단강 건너는 요르단이 있었다. 생각보다 너무 가까워 보였다. 실제로 그곳에서 침례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보였다. 삭개오가 올라간 뽕나무와 여리고, 그리고 베두인들을 보았다. 버스로 지나가는 길에 설명을 들었다. 이스라엘의 국제도시라고 할 수 있는 텔아비브에 비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는 낙후되어있었다.
이스라엘은 돈이 많다. 그래서 정원도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아프면 이스라엘에 있는 병원으로 간다고 했다. 절차나 규정이 까다롭고 불편하다고 했다. 선교여행 중에 나는 예수님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나의 첫 선교여행이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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