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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태신앙!! 못해 신앙!! / 김성령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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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0건 조회 105회 작성일 25-03-22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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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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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태신앙”을 어떤 사람들은 비하하여 “못해 신앙”이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나는 “모태 신앙인”이었을까, 아니면 “못해 신앙인”이었을까? 그 답은 아마도 나의 지나온 삶을 통해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모태신앙을 가진 집안에서 태어났다. 증조부 때부터 하나님을 믿는 가정이었고, 3남 1녀 중 외동딸로 자랐다. 아버지는 장로님, 어머니는 교회 여선교회 회장을 여러 차례 연임하실 만큼 신앙이 깊으셨다. 따라서 주일마다 교회에 가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졌고, 나도 자연스럽게 교회를 다녔다.

어릴 적 주일학교 때는 교회에 다니는 이유도 잘 모르고 그저 다녔지만, 중학생이 되면서 어른 예배인 대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을 때, 예배가 지루하게 느껴졌다.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교회에 가기 싫었지만, 교회를 빠지는 일은 허락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저 습관처럼 예배에 참석하고, 축도 시간이 되면 다른 사람들이 기도할 때 얼른 교회를 빠져나오는 모습이 나의 모습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다니던 교회는 교인 수도 많고, 2층까지 있는 꽤 큰 교회였던 것 같다. 중고등부가 있었는데도 내가 대예배를 드렸던 건지, 아니면 중고등부가 없어서 대예배에 참석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당시 나의 믿음은 그저 껍데기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그 상황 속에서도 성경 말씀이 무조건적으로 믿어졌고, 나는 예수님을 믿는 자녀라는 것을 늘 가슴속에 새기며 살아왔다는 점이다.

초등학교 동창들을 가끔 만나면, 그들은 “너희 집은 잘 살아서 고생을 안 했겠지”라고 말하곤 한다. 아버지는 꾸준히 직장 생활을 하시며 성실하신 분이었고, 어머니는 여러 가지 사업을 운영하셨다. 그래서 나는 비교적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중학생 때까지는 좋은 가방을 들고 예쁜 구두를 신고 다니며, 독방을 쓰고 자랐고, 어려움을 모른 채로 살았다.

그러나 그 시절은 영원하지 않았다. 내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어머니가 마산 시내에 새로 신축된 백화점에 스낵 코너와 화장품 코너를 임대하여 사업을 시작하셨는데, 그 백화점이 잘 되지 않아 부도나면서 큰 실패를 겪게 되었다. 그로 인해 나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상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그와 더불어, 사촌오빠가 하는 건축 사업을 믿고 어머니가 건축사업에 발을 들이셨는 데, 여러 번 실패하면서 결국 빚잔치를 하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큰 2층집과 나머지 부동산까지 모두 잃고 흩어져 살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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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상황 속에서도 아버지는 여전히 신앙생활에 충실하셨지만, 어머니는 사람들에게 부끄러워서 교회에 나가지 않으셨다. 나는 그 기회를 틈타 '엄마가 교회에 안 나가니까 나도 안 나가도 되겠네'라고 생각하며 교회를 나가지 않게 되었다. 오빠들과 동생들도 아직 믿음이 생기기 전이었기에, 우리 가족 중 아버지만 빼고 모두 교회를 등지게 되었다.

이렇게 나의 생활은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흘러갔고, 당연히 죄가 죄인 줄도 모르고 방탕한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뇌종양 진단을 받으셨고, 약 6개월의 투병 생활 끝에 60세에 세상을 떠나셨다. 딱 지금 내 나이에 말이다.

가끔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지금 비록 겨자씨보다도 작은 믿음이지만, 그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끈질기게 기도하여 어머니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을까 하고 말이다.

성경 말씀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않으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33) 하셨듯이, 나는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탕자처럼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부흥집회를 열심히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려 했고, 이단 집회에도 참석했지만, 하나님께서 분별력을 주셔서 이단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주셨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부흥집회와 기도원에 열심히 다니고 성가대 활동도 하며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지만,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시간은 부족했다. 나는 길가에 뿌려진 씨앗처럼, 목사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했고,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에 속한 삶을 살았다.

지금도 가끔은 '내가 조금 더 빨리 하나님을 온전히 만나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았다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영국 작가 지프리 초서의 속담 “Better late than never” 즉, “늦게라도 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 낫다”는 말처럼, 지금이라도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삶이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하다.

물론 나도 연약한 인간이기에 세상에서 넘어질 때가 많다. 그럼에도 나에게 전지전능하시고 나의 힘과 능력 되시며 구원자 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나는 다시 일어서서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다. 그 은혜에 감사드릴 따름이다.

『하나님, 부족한 딸을 지금까지 인도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참 나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하옵소서. 비록 저의 지난 삶이 부끄럽고 부족했을지라도, 앞으로의 삶을 통해 주님께 영광 돌리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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