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말라기 3:7-12 /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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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1건 조회 83회 작성일 25-04-01 05:45

본문

 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는도다

 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9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12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지 말라

부모의 품을 떠나 방황하는 아들과 같이, 아버지 하나님을 떠나 죄악을 행하는 이스라엘을 향해 "돌아오라"고 호소하십니다. 출애굽 이후 조상 때부터 말씀을 떠나 불순종하였던 이스라엘, 죄악으로 인해 나라를 잃고 수치와 멸시 가운데 열방으로 흩어졌던 그들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셔서 속박의 고통에서 자유를 얻게 하셨습니다.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었던 연약한 이스라엘을 바벨론에서 구원하시고 은혜를 베푸신 목적은 오직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거룩한 나라, 성결한 백성으로 다시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했던 그들의 믿음과 열정은 사라졌고,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죄악이 가득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거룩한 나라 건설을 위해 마음으로는 멀리 떠나 있던 백성들을 향해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육체의 이스라엘은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라고 묻습니다(7).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이 곧 주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전을 재건했던 세대가 지나고 새로운 세대가 들어선 지금, 하나님은 그들에게 경험되지 않은, 멀고 묘연한 분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우상숭배와 음란이 주는 육체의 달콤함을 버리지 못한 이스라엘은 입술로는 진리를 구하지만 마음과 행위는 더 깊은 어둠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지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닙니다. 죄악이 주는 달콤함과 탐욕의 풍성함을 버리지 않고도 살 길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언약을 잊지 않으시고(6), 백성을 사랑하시며(1:2) 계속해서 돌아오라 하시지만, 아버지의 집보다 쾌락의 장소가 더 큰 만족을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6:13). 하나님의 호소 앞에서 우리가 즐기던 세상의 것을 포기하지 않고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아버지의 집의 평안과 기쁨을 깨닫지 못한 아들은 결국 탐욕을 버리지 못하지만, 지혜로운 아들은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돌아오는 결단을 내릴 것입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라고 말합니다(8). 피조물이 창조주의 질서를 거슬러 도둑질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큰 죄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십일조와 헌물을 도둑질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일조와 헌물을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것이라는 사실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율법은 이미 “모든 소나 양의 십일조는 목자의 지팡이 아래로 통과하는 것의 열 번째의 것마다 여호와의 성물이 되리라”(레 27:32)고 명령했습니다. 이는 드리는 자의 사심이 개입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율법은 조상 대대로 전해졌으며, 백성들은 어릴 적부터 율법을 배우며 익혀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모르겠다”고 하는 것은 무지가 아니라 탐욕에서 비롯된 고의적 불순종입니다. “주의 것”은 “내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구별하여 드리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을 내 것이라 여기는 죄악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처럼 그들의 항변은 단순한 무지가 아니라, 죄악된 삶이 깊이 자리 잡고 습관화된 결과입니다.

탐욕스러운 인생은 항상 눈높이를 더 높이며, 늘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이런 탐욕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게 만들며, 재물에 몰입하게 합니다. 탐욕이 가득한 자에게 재물은 곧 하나님이며, 재물의 많음이 곧 전능입니다. ‘도둑질’은 단발적인 행위가 아니라 반복되고 습관화된 행위를 의미합니다. 어떤 이들은 율법의 시대는 끝났고 은혜의 시대가 왔으니 십일조의 의무도 끝났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에베소서에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엡 2:15)라는 말씀은, 율법 자체가 폐해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이 아닌, 정죄의 율법, 즉 조문으로 된 율법을 의미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정죄를 넘어서는 구원이 완성되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 5:17)고 하셨습니다. 십일조는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며, 그분이 주신 것임을 인정하는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열의 아홉을 주시고, 하나를 구별해 드리라 하셨지만, 백성들은 그 하나마저 탐하며 자신의 소유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고 하시며(9),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것을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시험하여 보라”고 하십니다(3:10). 하나님의 말씀은 단호하며 분명합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고, 이를 드림으로 복을 주시는지를 시험해보라는 말씀은, 실제 시험을 허락하신 것이 아니라 불신과 패륜 가운데 있는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탄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듯 백성을 사랑하시며 그들을 위해 일하십니다. 구하지 않아도 필요를 아시고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근본적으로 불신하고,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우상에게 절하며 제물을 바쳤습니다. “돈이 돈을 번다”는 세상의 가치관 속에서 사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부정하고 우상에게 제물을 드리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인정하는 삶에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하나님은 재앙을 멈추게 하시고 저주의 땅을 축복의 땅으로 바꾸실 것입니다(11). 사람이 뿌리고 거두는 모든 것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자연재해 하나로 모든 것이 쓸려갈 수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주의 것을 구별하여 드리는 자를 위해 하나님은 일하시고, 그들의 소산을 보호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모든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삶이 어떠한지를 보게 하실 것입니다(12).

신약에서 십일조가 조문처럼 명시되지는 않지만, 율법의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아버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아들을 아버지의 아들로 인정할 수 없듯,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인생은 하나님의 백성이라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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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님의 댓글

연두 작성일

화요 묵상 김봉연입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건강, 물질, 지식, 지혜, 삶의 터전등)하나님께로 부터 왔음을 깨닫습니다.
☆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며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섬기며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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